화장품마저… “남이 쓰던 중고 삽니다”

입력 2012-11-13 19:46


직장인 금경원(32·여)씨는 최근 쓰다 만 향수와 아이섀도를 인터넷 중고시장에 올렸다. 중고 화장품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기에 올렸지만 쓰던 걸 누가 사겠느냐는 생각이 강했다. 기우였다.

올리자마자 연락이 쇄도했고 20개 가까이 되던 절반쯤 쓴 향수는 금방 새 주인을 찾아갔다. 그는 “새벽에도 물건을 사겠다는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다”면서 “안 팔려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지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불황이 이어지면서 남이 쓰던 제품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가전제품 같은 공산품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에는 중고 거래가 생소했던 화장품, 아기옷 등도 판매가 늘고 있다.

G마켓은 지난 11일까지 최근 한 달간 중고·재고시장 카테고리 내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매출이 늘었다고 13일 밝혔다. 남성의류는 무려 443%나 뛰었다. 남이 입던 옷이라도 개의치 않는 남성들의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고 화장품 판매량은 90%, 가방·신발 등 중고 잡화는 13%, 여성의류는 26% 늘었다. G마켓 관계자는 “최근에는 유행을 크게 타지 않는 의류나 잡화, 화장품 등이 중고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중고 화장품의 경우 주로 색조 화장품이나 향수 등의 판매가 많은 편이다. 금방 싫증이 나는 제품이라 사놓고 다 쓰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부 알뜰 소비자 중에서는 아이섀도나 립스틱 등을 몇 등분으로 나눠 재포장한 ‘소분’ 제품을 만들어 인터넷 중고장터에 올리기도 한다. 반면 꾸준히 사용하는 기초화장품은 중고 거래가 거의 없다.

유아의류 매출도 지난해보다 2배 늘었다. 키즈 산업에는 불황이 없다고 하지만 요모조모 따져보면 중고 아기옷을 사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하는 알뜰 엄마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 30대 주부는 “아기는 금방 자라기 때문에 한 살 전에는 두 달 이상 입을 수 있는 옷이 없다”면서 “다른 아이가 입었던 옷이라 해도 몇 번 안 입은 거고, 신상품 사는 것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중고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 수입브랜드의 아동용 오리털 점퍼의 경우 올해 신제품보다 지난해 제품의 디자인이 더 좋다고 소문이 퍼지면서 중고 구매를 문의하는 글이 많다.

불황에 저렴한 제품을 찾는 수요가 늘면서 1000원짜리 치약도 등장했다. 애경은 자사 치약브랜드 2080 출시 14주년을 기념해 ‘2080 리미티드 에디션’을 100만개 한정으로 1000원에 판매한다고 밝혔다. 2080이 1998년 출시 당시 2100원이었음을 고려하면 14년 전 가격의 절반 이하로 파는 것이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