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 없는 건물’에도 장애 있었다… 서울시 인증제 실시 무색, 좁고 불편한 곳 투성
입력 2012-11-13 19:03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허모(37·여)씨는 지난 7일 장을 보기 위해 전동휠체어를 타고 ‘서울형 장애물 없는 건물’로 선정된 서울 조원동 농협 하나로마트 관악점을 방문했다. 갑자기 소변이 급해진 허씨는 지하 1층 화장실에 장애인용 표시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화장실에 장애인용 변기는 없었다. 화장실 내부도 좁아 볼일을 보지 못하고 겨우 휠체어를 돌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허씨는 “자칫하면 옷에 실수를 할 뻔했다”며 “장애인을 위한 건물에 화장실 안내도 제대로 안돼 있어 황당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월부터 백화점, 대형마트, 병원, 종교시설 등 민간시설에 ‘서울형 장애물 없는 건물 인증제’를 실시했다. 현재까지 장애물 없는 건물로 선정된 곳은 홈플러스 월곡점, 서교동 홍익몰, 신촌성결교회, 롯데백화점(미아점, 건대스타시티점, 청량리점), 부민병원, 관악농협하나로마트, JNK디지털타워다.
서울시는 “장애 없는 건물로 지정되면 인증서와 명판이 교부돼, 장애인·노약자를 위한 건물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장애 없는 건물로 선정된 곳이 정작 장애인의 편의는 외면하고 있었다.
13일 방문한 서울 조원동 관악농협하나로마트는 출입문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었지만 그 위에 천막이 세워져 무용지물이었다. 청각장애인 화상전화기가 설치돼 있는 1층 장애인접수 데스크 앞에도 박스가 쌓여 있어 접근조차 어려웠다. 장애인용 화장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하 1층 여자화장실에는 장애인 화장실이라는 표시가 있었지만 막상 안에는 장애인용 변기가 없었다. 1층 남녀 장애인화장실 용변기에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등받이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세면대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다른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난 5월 장애물 없는 병원 인증을 받은 서울 등촌동 한 병원 입구에는 점자 병원안내판이 설치돼 있었지만 관리가 안 돼 녹이 슬어 있었다. 또 병원 통로가 좁아 장애인이 전동휠체어 및 전동스쿠터 등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블록도 없었고, 한쪽에만 손잡이가 설치돼 있어 손으로 잡고 이동하기도 힘들었다.
장애물 없는 건물로 인증 받으려면 주출입구에 휠체어 접근로 설치, 문턱 제거, 승강기와 장애인 화장실 대변기 의무 설치 등 조건을 갖춰야 한다. 이 외에도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자동문, 장애인용 세면대 등 7개 선택항목 중 4가지를 충족하면 된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장애 없는 건물에 대해선 장애인들에게 꼭 필요한 복도 유효폭 확보, 장애인 주차구역 등 선택 항목을 인증 의무 항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