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목소리] 천연물신약 전면 재검토해야

입력 2012-11-13 18:16

세계 수준의 신약개발을 목표로 추진했던 천연물신약 개발 사업이 궤도를 크게 이탈하면서 한의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1999년 천연물신약연구개발 촉진법 제정 당시만 해도 ‘천연물신약’의 의미는 자연물에서 추출한 유효성분약을 의미했다. 당연히 허가 기준 역시 아스피린이나 탁솔 등 국제수준의 신약 허가와 유사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2년 천연물성분 추출약에 한약재 통 추출물을, 2008년에는 한약 복합 처방 추출물까지 포함시켜 허가 기준을 대폭 완화한 후 전통한의서와 한방 의료기관의 임상경험을 근거로 신약 개발 시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독성검사와 임상시험 일부를 면제해 주었다. 더욱이 전통한의서와 한방 의료기관의 임상경험을 근거로 다수의 임상시험과 독성검사를 면제한 채 의약품으로 인정하면서도 정작 시행과정에서 한의학의 전문가집단인 한의사의 참여는 배제됐다.

9020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고도 ‘엉터리 신약’으로 비난받고 있는 천연물신약 개발사업은 한의계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천연물신약 허가를 위한 근거규정과 기준이 약사법상의 신약과 달라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임상시험과 독성검사의 상당 부분을 생략한 채 탄생한 천연물신약이 현재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의사들에 의해 버젓이 처방되고 있고 향후 수십 종의 제품이 추가로 출시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특히 한약제제임에도 한의사는 처방권에서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다.

현재 천연물신약 개발 사업과 관련한 한의사의 분노는 증폭되고 있으나 정작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관계당국은 문제 해결보다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부와 보건의료계통 직역군이 추구해야 할 최고 가치는 ‘국민보건증진’이다. 정책의 시행과정에서 이 가치를 벗어날 수는 없으며 국민건강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대한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천연물신약 개발사업의 전면 재검토와 의약품 허가 규정의 강화를 관계당국에 강력히 요구할 계획이다. 또한 한의약의 전문가 집단으로서 향후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할 제도적 장치 마련도 계획 중이다. 이는 결코 이권투쟁이 아니며 세계속의 치료의학으로 한의약의 자리매김을 위한 전문가 집단의 학문적 자존심이며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의료인의 양심의 발로이다.

이종안(대한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