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무차별적 차별 때리기와 사회 탓
입력 2012-11-13 18:16
얼마 전 TV에서 미혼모 문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그걸 보면서 절로 한숨이 새 나왔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냉대를 공격하는 것과 함께 여기서도 ‘사회책임론’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발언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이 심각하다는 것. 미혼모는 학업에도 취업에도 제한을 받는다. 아울러 그들을 바라보는 ‘편견에 가득 찬’ 사회의 차가운 시선도 견뎌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미혼모에게도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 제도적 성적 결합(결혼을 의미하는 듯)에 의한 자녀 출산만 축복받아야 하는가.
참으로 위험한 주장이다. 미혼모가 겪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연민의 눈으로 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혼모를 정당화한다거나 나아가 잘한 일이나 한 것처럼 떠받들 수는 없다. 윤리와 도덕의 문제도 있거니와 그랬다간 가정을 존립기반으로 하는 인간사회의 질서가 근본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다. 미혼모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미혼모가 돼도 괜찮다는 식으로 부추겨서는 안 된다. 미혼모를 무조건 차별하지 말라고 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정치적으로 올바름(politically correctedness)’이라는 개념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성별, 인종, 외모 등 ‘주어진 것’을 놓고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일체의 차별을 무차별적으로 금기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작위에 의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차별하는 것은 당연하듯 ‘정당한 차별’은 있어야 한다. 사회의 기초단위로서 가정의 해체를 초래할 수도 있는 미혼모를 경원시하는 것은 정당한 차별이다.
또 미혼모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성적 자유, 나아가 방종을 부추기는 매스 미디어의 범람 등 사회 분위기가 미혼모를 만들어내는 원인이기 때문에 사회가 미혼모의 발생 및 대책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말도 안 된다. 이런 주장은 개인의 의지나 자기 결정권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개인은 능동적·자발적인 의지라고는 전혀 없이 오로지 주변 여건, 혹은 사회에 의해 피동적으로 휘둘리는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술을 많이 먹어도 사회 탓이요, 성폭력 등 잔혹 범죄나 청소년 일탈행위도 사회 탓이고 미혼모마저 사회 탓이라면 자기 삶의 주체로서 ‘나’라는 존재는 아예 없는 것인가.
책임 회피도 이런 회피가 없다. 이젠 툭하면 아무데나 사회 탓 좀 그만하고 개인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