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약실천한다고 대통령예산 편성하나

입력 2012-11-12 22:12

국회가 내년 예산안 심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통합당이 새 대통령 예산으로 3조∼4조원을 따로 떼놓자고 요구했다고 한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 342조5000억원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현재 국회가 심사하고 있는 내년 예산안은 이명박 정부가 짠 것이기 때문에 12월 19일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의 공약을 실현하려면 대통령 몫의 별도 예산을 마련해놓아야 한다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하지만 예산편성 정권과 집행 정권이 다른 문제가 있더라도 안 될 말이다. 예산심사권은 입법권과 함께 국회의 중요한 업무다. 국회는 국민을 대신해 행정부가 국민이 낸 세금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도록 예산안을 짰는지 심사하고, 사후에는 결산심사를 한다. 그럼에도 신임 대통령 몫의 예산을 남겨주겠다는 것은 국회가 할 일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이런 주장은 헌법에도 위배된다. 헌법 57조는 국회가 정부 동의를 받지 않고 정부가 제출한 예산을 증액하거나 새 항목을 만들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또한 신임 대통령 몫의 예산을 배정하면 당선자는 재정건전성이나 정책 우선순위를 고려하기보다 포퓰리즘적 공약을 실현하는 데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정권 초마다 신임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과 차별되는 치적을 남기고 경기를 부양하려는 유혹을 받기 쉽다. 그러다보니 새 정부 출범 이후 새 사업을 위해 한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게 관행이 됐다.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6월과 10월 두 차례 추경을 편성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2008년 6월 추경을 편성했다.

그렇지 않아도 차기 정부는 여야 대선후보들의 복지공약 남발로 재정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회 예산안심사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 예산 확보전쟁으로 변질됐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3조원 증액을 요구하고 있고, 민주당은 문재인 후보 공약 실현을 위해 12조원 증액을 주장하고 있다. 내년 정부 예산안은 낙관적으로 짜여져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깐깐한 국회 심사가 요구되지만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재정위기를 겪는 그리스·스페인 등은 물론 프랑스 정부는 50년 만에 가장 혹독한 새해 긴축예산안을 준비 중이고, 유럽 국가 중 탄탄한 독일마저 긴축재정에 들어간다고 한다. 일본 역시 2009년 중의원 선거 당시 내걸었던 복지공약을 철회한데 대한 사과로 차기 선거 운동을 시작할 방침이다. 그만큼 세계경제 시계(視界)가 암울하다는 방증이다.

전임 대통령이 짠 예산을 후임 대통령이 집행하는 주기 불일치 문제와 부실한 예산안 심사 문제는 예산심사를 상설화하든지, 심사시기를 변경하는 등 대통령과 국회가 협의해 국가재정법을 고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