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터지면 “돈 내놔라”… 은행 팔 비트는 금융당국
입력 2012-11-12 18:53
금융당국이 은행을 ‘만병통치약’으로 쓰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와 하우스푸어 등 산적한 경제문제를 은행에 떠맡기는 형국이다. 금융당국의 ‘좋은 일’에 은행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간다. 하지만 경영실적이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의 과도한 지출은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만들어진 은행권 청년창업재단은 지난달까지 5개월 동안 1061건에 390억원을 지급 보증하는 데 그쳤다. 은행들로부터 3년 동안 5000억원을 출연 받아 활용하기로 한 출범 당시 청사진과 비교하면 저조한 실적이다. 청년창업재단은 에비창업자나 창업 3년 이내의 20∼30대에게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위원회 주도로 설립됐다. 금융위는 20개 시중은행에서 출연금을 거둬 재원을 조달하기로 약속했다.
문제는 자금 지원 시 보증비율을 100%로 해 부실 사태가 벌어지면 출연한 돈을 고스란히 허공으로 날릴 수 있다는 데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좋은 일이라고 하니 동참은 했지만 요즘 같은 불황에 누가 창업을 하려고 하겠느냐”며 “혹시라도 부실 사태가 벌어지면 책임은 결국 은행 몫”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은행에 손을 내미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저축은행 살리기도 시중은행의 돈으로 진행되고 있다. 민주통합당 민병두 의원에 따르면 저축은행 사태에 투입된 예금보험공사 자금은 17조5738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7조7270억원이 더 들어갈 전망이다.
예보는 24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자금을 정부 기금과 은행 차입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래도 자금이 부족하자 지난해부터는 정부가 보증하는 예보상환기금채권이 아닌 자체 기금으로 채권(예보채)을 발행했다. 그런데 예보채는 은행들이 대부분 사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은행들이 예보채 매입 비중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차입금에 예보채까지 은행들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은행들은 하우스푸어 대책에서도 등을 떠밀리고 있다. 금융위와 금윰감독원은 “개별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면서 은근히 은행들을 압박했다. 우리금융그룹은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신탁 후 재임대)’ 방안을 내놓았다. 이후 금융권에서 하우스푸어 대책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금감원이 쓰지 않는 신용카드 포인트를 기부해 금융 피해자를 지원하자며 만든 ‘새희망 힐링펀드’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은행과 금융사의 법인카드 포인트를 뺏어 생색은 금감원에서 내겠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잘못된 정책으로 피해자를 양산해놓고 금융사 돈으로 수습하려 한다며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은행돈으로 각종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독이 될 수 있다”면서 “급하다고 은행돈을 마구 쓰다보면 결국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간다”고 경고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