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으로 걸으며 세상 품는 화가 고운산… EBS ‘희망풍경’

입력 2012-11-12 19:48


희망풍경(EBS·13일 밤 12시5분)

그곳에 가면 앉은걸음으로 우리 산하 끝자락을 샅샅이 밟는 이가 있다. 제주 화가 고운산(46)씨.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 마비가 됐다.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중증 보행장애인이다. 그는 제주 세화고를 졸업한 뒤 3년 재수 끝에 1987년 제주대 동양화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93년 서울대 미대 한국화과에 들어가 수석 졸업을 해 화제가 됐다. 가난은 늘 따라 다녔지만 그림에 대한 집념이 그를 강하게 만든 것이다.

그를 지도했던 화가 김병종 서울대 교수는 “하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서도 관악산에서 열리는 야외 스케치 수업에 빠지는 적 없이 참석하는 걸 보며 경이감을 느끼기까지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보행(步行)은 사실 양손을 사용한 ‘수행(手行)’이다. 두 손으로 양 발목을 붙잡고 조금씩 몸을 움직여 내딛기 때문이다. 이 수행을 40여년 고수해왔다.

카메라는 그의 느린 걸음을 담았다. 하반신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앉은뱅이’라는 시선도 괘념 않고 그만의 방식으로 보행을 하는 것이다. 고씨는 “휠체어는 되레 불편하다. 계단도 못 올라가고 누군가에 의지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조영진 PD는 “전동식 휠체어 등 보조장비를 탈 수 있는데도 양 손 보행으로 평생을 살아왔다”고 전한다.

요즘 고씨는 화가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과 어울려 제주 곳곳으로 스케치여행을 다닌다. 그림을 배우고 싶어도 경제적 여건 등이 안돼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제자 삼아 재능기부를 하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그는 매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