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는 시력도둑 혈당조절로 잡아라… 당뇨병 합병증, 당뇨망막증 주의보

입력 2012-11-12 19:50


녹내장, 황반변성과 함께 성인의 3대 실명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당뇨망막증(당뇨병성 망막증)은 영화관의 스크린 또는 카메라의 필름 역할을 하는 망막이 손상돼 사물의 형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병이다. 당뇨병 때문에 생기는 합병증이다. 고혈당에 의해 끈적끈적해진 핏덩어리가 모세혈관을 막고, 이로 인해 필요로 하는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망막이 파괴되는 것이다.

한국망막학회에 따르면 당뇨망막증으로 실명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58.2세다. 이들은 또한 평균 14.5년간 당뇨를 앓아 온 것으로 조사돼 있다.

올해 눈의 날(11일)과 세계 당뇨의 날(14일)을 맞아 당뇨망막증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좋은지 알아본다.

◇당뇨망막증은 소리 없는 시력도둑=당뇨는 흔히 고혈압과 더불어 ‘침묵의 살인자’ ‘소리 없는 시력도둑’으로 불린다. 혈액 내 당도가 높아져 피를 끈적끈적하게 만들고 소변 속에서도 당분이 검출되는 증상, 즉 고혈당에 의한 당뇨는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키기 전까지 대부분 발병 사실을 모르고 지내기 때문이다.

당뇨에 의해 혈액 중 당 농도(혈당)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피가 마치 설탕물처럼 끈적거려 혈액순환에 장애를 받게 되고, 그 영향은 핏줄과 신경 가지가 분포하는 곳이면 거의 모두 미치게 된다. 무수한 모세혈관을 통해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는 눈 속 망막 조직도 예외가 아니다.

망막은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최근 들어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실용화되기까지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아 갈 길이 멀다.

따라서 현재로선 당뇨망막증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혈당 조절뿐이다. 혈당조절은 약물치료와 식생활 습관 개선으로 이뤄진다. 금주와 금연도 필수적이다.

초기 당뇨망막증은 이런 방법만으로 충분히 개선이 가능하다. 혈당조절에 성공할 경우 시력도 그런대로 잘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당뇨망막증이 이미 상당히 진행돼 망막이 많이 손상된 상태라면 ‘범망막광응고술’ ‘국소레이저광응고술’ ‘항체주사치료’ ‘유리체절제술’ 등과 같은 수술을 통해 좀더 공격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그러나 망막기능 및 시력 회복 등의 치료 효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다.

◇당뇨 환자는 정기 안과검진 필수=당뇨 환자가 당뇨망막증을 합병해 실명하는 위험을 줄이려면 무엇보다도 정기적으로 안과검진을 받아야 한다. 당뇨망막증은 거의 말기 단계에 이르도록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TV 화면이 꺼지듯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시력이 손상될 때까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연세의료원 세브란스 안·이비인후과병원 안과 이상열 교수(대한안과학회 이사장)는 “투병 기간과 관계없이 당뇨 환자 10명 중 8명 이상이 당뇨 진단을 받기 전 안과검진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고, 실명 직전의 말기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과를 찾는 경우가 44%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있다”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또 다른 문제는 병이 진행될수록 시력이 더 나빠질 확률이 높아지는 게 사실이지만, 이런 시력 이상만으로 악성도를 파악하기도 어렵다는 점. 예를 들어 매우 심각한 상태의 당뇨망막증이라 하더라도 망막 손상이 시력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중심부 ‘황반’에만 국한돼 있을 경우 평소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뇨 환자들이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안과검진 받기를 생활화하는 게 중요하다. 당뇨망막증은 대개 당뇨 발병 5년 후부터 시작된다. 혈당 조절이 잘 안돼 비정상적으로 고혈당 상태로 지내야 망막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이때부터는 6개월∼1년 간격으로 안과검진을 받는 게 좋다. 그래야 치명적인 당뇨망막증을 조기에 발견, 실명을 막을 수 있다. 단, 가임기 여성에겐 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누네안과병원 망막센터 김형은 원장은 “임신 중에는 당뇨망막증 진행이 촉진되는 경향이 있다”며 “가임기 여성이 당뇨병을 가진 상태에서 임신을 시도할 때는 당뇨 유병 기간과 관계없이 반드시 안과를 방문, 망막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