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파일] 수능 이후 학부모의 역할

입력 2012-11-12 19:49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났다. 매년 수능이 끝난 후, 시험결과에 스스로 낙담한 학생들이 자살하거나 비뚤어진 일탈 행위를 택하는 경우가 있어 조금 걱정이 된다. 아마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는 직업병(?) 탓일 것이다.

고3 수험생들이 일탈 행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좋은 성적만이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며, 미래의 성공과 행복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탈 행동은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학생에게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수능에서의 작은 실패를 인생에서 실패한 양, 과대평가하여 자포자기하거나 그 해결책으로 자살이라는 가장 어리석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우울증은 자살의 여러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이 어린 청소년들에게도 우울증이 발생한다. 청소년 우울증의 원인은 비단 성적뿐만 아니라 주변의 기대에 대한 죄책감,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억압, 가정불화, 또래 집단에서의 폭력이나 따돌림, 성문제나 이성친구와의 갈등 등 다양하다.

우울증에 빠지면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고, 집중력 저하로 인해 성적이 떨어지고, 주변에 흥미를 보이지 않게 되며, 과묵해지고 행동이 느려지거나 식욕 저하 및 체중 감소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수면장애나 피곤함을 자주 호소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선 반항적 태도, 폭력, 결석이나 가출, 폭식, 음주, 흡연 등 다소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수능과 같은 큰 시험을 계기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우울증이 표출되는 경우도 있다. 시험 준비 중 억지로 눌러 참았던 우울증이 시험 종료와 동시에 본격적으로 발호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부모들은 수능이 끝나면 혹시 자녀에게서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는지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심한 경우 우울감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자칫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법을 모를 때는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도 도움이 된다.

실패에 따른 실망을 잘 받아주는 것도 부모의 몫이다. 특히 수능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될 경우 그것을 인생 전체를 실패한 듯이 받아들이지 말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수능은 길고 긴 인생에서 초기에 겪는 한 과정에 불과하다. 학교 공부 말고도 다른 재능으로 사회에 공헌할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학부모 자신이 믿어야 하며, 그 신념을 자녀에게도 그대로 말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사랑받고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자녀가 생각하도록 하거나 절대 책망해서는 안 된다. 비록 시험성적이 나쁘더라도 부모에게는 그 모습 그대로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자녀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송동호 교수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