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삼성과 서울대의 존재 이유
입력 2012-11-12 19:16
삼성과 서울대는 ‘최고’라는 점에서 닮았다. 삼성은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이며, 서울대는 학력 서열 1위이다. 삼성은 우리나라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서울대는 국내 수많은 대학들을 선도하고 있다. 삼성은 대학생들이 입사하길 가장 원하는 곳이며, 서울대는 고교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삼성의 경우 국민적 사랑에 보답하려는 듯 국가 사회적 책무에 비교적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 브랜드 가치 세계 10위권인 초일류 삼성이 부의 세습과 문어발식 확장 등을 이유로 다른 대기업들과 함께 재벌개혁의 심판대에 올라있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낮은 곳을 배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사랑 받겠다는 서울대
‘함께 가는 열린 채용 제도’를 도입한 삼성은 최근 3급(대졸) 신입사원 공채에서 4500명의 5%에 해당하는 220명의 저소득 가정 출신자를 선발했다. 전체 합격자의 36%(1600명)는 지방대 출신이다. 장애인 600명을 별도로 뽑기도 했다. 최고 인재만을 선발할 능력이 있음에도 해외유학 다녀온, 부잣집 자녀나 스펙 좋은 서울 명문대 졸업생만 골라서 뽑지 않는다는 사실은 신선하다. 임직원 3000여명이 어려운 환경의 초등학생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나 사회적기업을 5개나 운영하고 있는 것도 국민과 함께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평가하고 싶다.
서울대는 어떤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면 오연천 총장이 인사말을 통해 “이제 국민에게 사랑받는 서울대학교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입시제도와 최근의 입학생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대가 과연 전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서울대가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과 정원 외로 뽑는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이란 입시제도를 갖고 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가정 형편상 도서 벽지에 살더라도 고교 내신 성적이 우수한 학생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최고 국립대학의 문을 열어놓은 것은 ‘나눔’의 표시로 이해된다. 문제는 그것뿐이란 사실이다.
2014학년도 입시안을 보면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는 수시 일반전형 모집인원이 전체의 58%나 된다. 이 전형은 서류평가로만 뽑거나, 서류와 면접 및 구술고사를 거치도록 돼 있다. 지원자는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뿐만 아니라 학교(출신고교)소개 자료와 추천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입학사정관과 면접 교수가 학생의 잠재력을 중점적으로 본다지만 출신고교의 학력수준과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 등을 살펴보겠다는 의도 아닌지 모르겠다. 거기다 이과계 면접 및 구술고사는 상당부분 대학에서 배우는 수준이어서 AP(대학과목선이수제)를 한 특목고생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입시제도는 부잣집자녀 유리
지난해 서울대 입학생의 65.7%가 특목고와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이라는 통계(KDI 11월 5일 발표)는 이런 ‘가진 자 우대전형’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서울지역에서 서울대에 진학한 학생 중 특목고생 비율이 2002년 22.8%에서 지난해 40.5%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서울대가 은밀하게 고교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서울대가 2014학년도부터 정시모집 수능 반영 비율을 30%에서 60%로 높이고, 내신반영 비율을 40%에서 10%로 낮추기로 한 것은 그동안 명문 사립대에 빼앗겼던 일부 수능 최우수 학생들까지 싹쓸이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서울대가 법인화됐다지만 엄연히 ‘국립대학 법인’이다. 엄청난 액수의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대학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특목고생과 강남3구 출신 학생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된다. 서울대 입시제도의 전면적 손질이 필요한 이유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