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추락하는 BBC

입력 2012-11-12 19:27

BBC(British Broadcasting Company)를 만든 주체는 1922년 당시 기술의 첨단을 걷던 무선통신업자들이었다. 이들은 “미국의 방송은 너무 상업적이고, 소련은 국가 통제에 놓여 있다”며 독립이 방송의 생명이라고 여겼다. 정부예산이나 기업광고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체국에서 청취료를 거둬 비용을 충당했다. 초기 편성은 연극과 토론, 음악이 중심이었다. 뉴스는 신문판매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저녁 7시 이후에 내보내는 신사도를 발휘했다.

이사회는 총리의 추천에 따라 여왕이 임명하는 전통을 가졌지만 방송 내용이 총리나 여왕의 입맛에 좌우되지는 않았다. 독립성은 권위를 가져와 1926년에 이미 청취료 납부자가 225만명에 달할 정도였다. 1938년의 BBC 청취자는 영국 인구의 98%에 이르렀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40개 언어로 방송하고 있었다. 히틀러의 분신이랄 수 있는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독일이 유럽을 탱크로 점령하기 전에 BBC가 유럽을 점령해 버렸다”며 한탄했다.

1953년 6월 2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을 기점으로 TV 수요가 폭발했고 인간의 달 착륙, 최초의 컬러 방송,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 결혼, 베를린 장벽 붕괴 등 대형 뉴스가 터질 때마다 성가는 수직상승했다. 1980년대 말에는 BBC 프라임, BBC 아메리카 등을 출범시켜 전 세계 4억5000만 가구를 수신자로 끌어들였고, 텔레토비 인형이나 어학테이프와 같은 상품으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미디어학자 마크 턴케이트가 파악한 BBC 브랜드 가치의 핵심은 신뢰성이다. 2003년에 영국이 이라크전 참전을 결정했을 때 이라크군의 무기에 관한 정보를 부풀렸다는 보도에서 보듯 종종 정부와 대립한다. 국익에 대한 생각이 정부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버버리코트 같은 ‘더 타임스’, 글로벌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 세계를 주름 잡는 ‘로이터’ 등과 더불어 영국 미디어 시장의 굳건한 중심이다.

이 권위의 방송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간판급 시사프로그램인 ‘뉴스나이트’의 인터뷰 기사가 허위로 판명 나 사장이 물러나게 된 것이다. 지난달 발생한 지미 새빌 아동성폭행 사건의 경우 지휘부의 은폐가 말썽이었다면 이번엔 가장 기본적인 사실확인을 게을리 한 것이어서 실망스럽다. 90년 전 오늘은 BBC가 런던 스트랜드의 스튜디오에서 매일방송을 시작한 날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