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낮은 사랑, 낙엽에게 물어보세요

입력 2012-11-12 17:49


안도현 시인의 ‘가을 엽서’라는 시를 아는가?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 낮은 곳으로 / 자꾸 내려앉습니다 /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 그대여 / 가을 저녁 한때 /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 사랑은 왜 / 낮은 곳에 있는지를” 시인은 떨어지는 낙엽을 가을 엽서로 비유했다. 그리고 그 가을 엽서는 낮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랑으로 표현했다. 짙어가는 만추의 계절, 낙엽을 통해서 가을 엽서의 낮은 사랑을 묵상한다.

성경에 보면, 십자가에 죽으러 가는 예수님에게 마치 가을 엽서의 사랑 같은 한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주님 앞에서 마치 가을 엽서처럼 언제나 낮은 곳으로 내려앉았다. 바로 주님의 발 아래로 내려앉고, 더 낮게 발 아래로 엎드렸던 여자였다. 그래서 故 이상근 박사는 마리아를 ‘발아래 여자’라고 불렀다. 그녀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겼다.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을 때도, 길바닥에서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통곡하며 애원하였다. 그리고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부은 후 머리털로 씻겨 드렸다.

예수님은 그녀의 낮아짐의 사랑을 너무나 아름답게 보셨다. 그래서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반드시 말하여 그녀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복음만 전파하지 말고 이 여자의 낮아짐과 헌신의 사례도 전파하라는 것이다. 왜냐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질 것인데 교회 일꾼은 반드시 마리아 같은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최대 비극은 주님의 발아래 엎드려 눈물로 섬기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님의 교회와 복음을 짓밟고 올라타 자신의 욕망의 바벨탑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교회와 교계가 기득권 싸움과 욕망의 충돌을 하면서 분열과 갈등의 아픔을 겪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주님은 얼마나 눈물 흘리며 아파하시겠는가?

그대는 과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엎드려서 섬기는 낮은 사랑의 사람인가? 아니면 주님의 머리를 올라타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짓밟으며 스스로 군림하고 왕이 되려는 사람인가? 가을의 끝자락, 낙엽들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진다.

이제 다시 낮은 사랑을 시작하자. 교회와 교계를 위해 마리아처럼 낮은 자리에서 눈물로 섬기자. 사람들이 알아주는 높은 자리가 아닐지라도, 주님과 눈을 마주치며 주님의 발아래서 영혼의 옥합을 깨트리는 낮은 사랑을 실천하자. 사랑, 그것은 저녁 한때 홀로 지는 낙엽처럼 낮은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기에.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