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안녕하십니까] “작은 배려가 자살률 낮추는데 큰 역할”

입력 2012-11-11 19:08


정신과 전문의 앤서니 제임스·라즈니쉬 아타바 박사

중증 정신장애 청소년을 위한 영국 옥스퍼드시 ‘하이필드 청소년 유닛’에는 못이나 옷걸이가 전혀 없다. 줄이나 옷가지를 걸어 목을 매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보안카드 소지자를 제외하면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책임자인 정신과 전문의 앤서니 제임스(왼쪽 사진) 박사는 “사소해 보이는 작은 배려가 자살률을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버킹엄셔 지역의 성인 유닛을 이끌고 있는 라즈니쉬 아타바(오른쪽) 박사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지난 9월 29일 런던에서 만난 그는 “파라세타몰 성분이 들어 있는 수면제를 복용한 자살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이 약의 1회 판매량을 제한하자 자살률이 급격하게 줄었다. 자살은 충동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자살 시도자가 약국을 돌며 약을 사 모으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며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책과 함께 단기적인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 박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지난 9월 27일 방문한 하이필드 청소년 유닛은 중증 정신질환자를 위한 입원시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밝은 분위기였다. 병상 15개 규모에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교실과 부엌, 취미활동 공간까지 마련돼 있어 기숙사가 딸린 작은 학교처럼 보였다. 교실 곳곳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아기자기한 장식품이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정신과 전문의와 함께 교사, 심리상담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치료사 등 30여명의 전문가가 팀을 이뤄 일한다.

-어떤 환자들이 주로 치료를 받나.

“식이장애부터 우울증, 정신분열증까지 중증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청소년들이 대상이다. 상태가 심각할 때는 입원해서 의료진의 24시간 서비스를 받고 호전되면 바로 퇴원한다. 위기를 넘겼다고 판단되면 주 1∼2회 방문하며 상태를 관리해 나간다. 병원에서도 수업을 받고 공부할 수 있다. 평균 입원기간은 1∼2주 정도이다.”

-퇴원 후 관리는 어떻게 하나.

“미국에서 개발된 1년 단위 ‘변증법적 행동치료(DBT)’를 도입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개인, 그룹, 가족의 3단계 치료법으로 자살충동이 극대화될 때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해주는 게 핵심이다.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살 충동을 느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매뉴얼을 가르친다. 이를테면 샤워나 산책을 한다든지, 충동이 극심할 때는 얼음물에 얼굴을 담그는 것 같은 아주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이다. 위기를 넘기면 자살시도나 자해의 가능성은 현격하게 줄어든다.”

-근본적은 해결책은 아니지 않나.

“맞는 말이다. 과거 학대경험이 자살시도의 원인이라면, 그게 해결돼야 한다. 하지만 상처를 대면할 힘과 용기가 없는 상황에서

‘네 인생에 대해 털어놓아 보라’고 말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학대의 트라우마를 해소하려면 상처를 들췄을 때 생길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실제적이고 단계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기술을 먼저 익힌 뒤 차근차근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다. 증상이 아주 심각한 청소년 환자 40명 정도가 DBT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결과가 긍정적이다.”

런던·옥스퍼드=글·사진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