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나가사키로부터 귀국길에 오르는 것은”… 강제징용 원폭 피해 故 김순길씨 일기 공개
입력 2012-11-11 18:55
“생명이 계속하면 추억도 새롭게 일어날 불망(잊을 수 없는)의 날이며 조선독립의 기원일이다. 악마 나가사키로부터 귀국의 도(귀국길에 오르는 것)는 8월 12일 오후 8시.”(1945년 8월 9일)
일제 강점기 막바지에 강제 징용돼 일본 나가사키의 미쓰비시조선소에서 일하던 중 원폭 피해를 당한 고(故) 김순길씨의 일기 내용이다. 1945년 1월 9일 일본에 끌려간 김씨는 그해 2월 12일부터 미군의 나가사키 원폭 투하 하루 전날인 8월 8일까지 수첩에 일기를 썼다. 원폭 투하 당일인 8월 9일자 일기는 해방 후 추가했다.
자신이 생활했던 나가사키를 ‘악마 나가사키’라고 표현하며 몸서리쳤던 김씨는 이 일기대로 8월 12일 나가사키를 탈출해 19일 부산에 도착했다.
일본어로 쓴 일기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비참했던 징용생활 등이 생생히 녹아 있다. “주먹밥 한 개로 배고픔을 달래는 것은 너무 어렵다.”(3월 9일)
원폭 투하 하루 전날 쓴 마지막 일기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이 엿보인다. “사쿠라다니 신사 근처의 민가 옆 두덩이에서 대기함. (공습경보) 해제는 12시정도였다. 도시락은 산에서 먹었다.”(8월 8일)
김씨는 1992년 7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조선소를 상대로 원폭피해 보상과 미불임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97년 말 패소했다. 항소심이 진행되던 98년 2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김씨의 일기 복사본(사진)을 비롯해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소송 자료 11건을 기증받아 홈페이지(www.history.go.kr)에 공개하고 있다. 자료에는 1972년 한국인 피폭자 수당 청구 소송을 제기한 손진두씨의 소송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식민지 과거 청산과 인권 확장을 위한 지난한 노력이 낳은 역사적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