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차 픽업, 최고 레저스타일
입력 2012-11-11 18:33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기자다. 그는 미국 인디애나주의 가을 풍경을 담기 위해 자신의 애마인 녹색 픽업트럭을 몰고 헤매다가 길을 물으려 한 농가 앞에 차를 세운다. 집을 지키던 주부 메릴 스트립은 매디슨 카운티 다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 이 픽업에 올라탄다.
픽업 뒤편 적재함에서 콜라를 꺼내와 건네는 남자와 담배를 빼어 문 여자. 그들의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은 함께 낡은 녹색 픽업에 올라타는 순간 시작된다.
픽업(Pick-up)은 진짜 남자를 위한 차다. 이름처럼 뭐든지 막 집어 담는 차다. 자동차 사전은 픽업을 ‘2인 이상이 탈 수 있고 밀폐형 탑승공간과 개방형 짐칸을 가진 경량 트럭. 짐이나 장비를 싣는 것 이외에 강력한 견인력도 필요하다. 구동은 후륜이나 4륜이며, 엔진은 최대 8기통까지’라고 정의한다.
한국에서 시판 중인 픽업은 쌍용차의 코란도스포츠가 유일하다. 코란도스포츠는 올해 1∼10월 내수 누적 기준으로 1만7422대가 팔려 쌍용차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코란도스포츠보다 형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란도C로 1만2621대 수준이다. 지난달에만 코란도스포츠는 국내에서 총 1482대가 팔려 코란도C(1681대)와 함께 쌍용차 모델 중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세를 이어갔다. 아직도 해고자 복직 등 파업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쌍용차이지만, 그래도 코란도 형제가 있어서 부활을 꿈꿀 수 있다.
코란도스포츠의 꾸준한 인기 비결은 뭘까. 우선 연간 자동차세가 2만8500원뿐이라는 무한 경제성이다. 자동차 등록법상 승용차가 아닌 화물차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동급의 다른 SUV 차량을 택하면 자동차세를 50만원 이상 내야 한다는 점에서 20분의 1 수준의 실용성을 갖췄다. 이에 더해 환경개선 부담금도 영구면제이고, 개인 사업자 부가세도 차량가격의 10%만큼 환급해 준다. 차값도 2.0 다른 디젤 SUV에 비해 몇백만원 싸다.
경제성만으로는 지속적 인기를 설명하기 힘들다. 코란도스포츠의 약진은 한국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주중에는 퇴근길 대형마트에 들러 필요한 자재들을 싣고 와 뭐든지 뚝딱 집에 만들어 달고, 주말에는 캠핑 장비나 자전거를 싣고 가족과 함께 교외로 나가는 아빠. 차에 붙는 첨단 장비나 날렵한 주행 성능에 질려버린, 자동차 그 자체의 힘을 단순하게 느껴 보고픈 사람들이 택하는 게 바로 픽업이다.
자동차 본고장 미국에선 픽업이 메인스트림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는 세단도 SUV도 아니다. 포드의 픽업 모델 F시리즈가 그 주인공이다. 1948년 첫선을 보인 이 모델은 지금까지 무려 3448만대 넘게 팔렸다. 77년 이후 2011년까지 35년간 미국에서 한번도 판매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한국 수입을 대행하는 포드코리아 측은 아직 이 모델의 국내 출시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 메이커가 미국 시장 공략을 준비 중이다. 기아차는 내년 양산을 목표로 지난 10년간 픽업 모델 ‘KCV-4’를 준비해 왔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는 픽업을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가 독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각오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기아차에 앞서 도요타가 ‘툰드라’란 이름의 픽업으로 미국에서 승부를 벌이고 있지만 연간 5만대 판매도 넘기기 힘든 상황이다. 쌍용차 역시 아직 미국 시장에는 노크조차 못했다. 2002년 무쏘스포츠, 2006년 액티언스포츠에 이어 코란도스포츠로 국내 유일 픽업의 족보를 이어오는 데만 만족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당당한 남자의 차, 픽업의 시대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