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YWCA 데보라 토마스-오스틴 회장 “21세기 여성의 역할 확대 그 출발점은 폭력에서의 해방”

입력 2012-11-11 21:58


“여성의 지위가 수세기 동안 많이 향상됐지만 아직도 여성들이 소외돼 있는 나라가 적지 않습니다. 남을 포용하고 소통에 능한 여성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들이 더 많이 나와서 변화를 만들어내도록 적극 도울 생각입니다.”

세계 120개국, 300만명의 회원을 둔 세계여자기독청년회(YWCA) 데보라 토마스-오스틴(52) 회장은 9일 서울 명동 한국YWCA회관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21세기 여성의 역할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남쪽에 있는 섬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인 오스틴 회장은 영국에서 지역 및 도시개발학과 토지경제학을 전공한 뒤 27년간 YWCA에서 여성인권 활동을 해 왔다.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한국 YWCA 주최로 열리고 있는 ‘2012 여성 폭력 국제지도자 훈련(ITI)’ 참석차 첫 방한한 그는 “북한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난해 7월 세계 YWCA 스위스 총회에서는 국제사회가 북한 여성의 인권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갖도록 하자는 내용의 결의안도 채택됐다.

“북한 여성들이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하고 북한의 어린이들은 충분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해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YWCA는 수년간 한국 YWCA와 함께 북한 어린이에게 먹일 분유를 북측에 전달했습니다. 예민한 한반도 정치상황은 잘 알지 못하지만 북한 여성과 어린이의 어려움만은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임기가 2015년까지인 오스틴 회장은 세계 각국의 여성 문제를 국제 사회에 공론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핵가족화, 개인화로 인해 폭력에 노출된 여성과 아이들이 방치되는 등 여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여성 폭력 문제는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위에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대가족 사회여서 가족폭력이 발생했을 때 할아버지나 할머니 등 폭력을 미리 예방하거나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많았지만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달라졌습니다. 숨겨진 가정폭력이 너무 많습니다.”

세계 YWCA는 이에 따라 여성폭력 문제 해결을 주력 사업의 하나로 선정했다. 각국 YWCA에서는 가족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온 사람들의 쉼터를 마련하고 성(性)·가정폭력 상담업무를 실시하고 있다. 피해여성을 구호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그는 “최근 ‘침묵의 장막(Veil of Silence) 프로젝트’를 진행해 자메이카를 비롯한 서인도제도 6개국의 가정폭력 피해여성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다”며 “피해 여성들이 힘을 얻고 쉼터를 찾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태신앙으로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는 그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간증했다.

“여성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남녀는 다르지만 평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해야함을 교육해야 합니다. 여성들도 여성 본인의 안전이 남성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 가치관을 배우며 자라 자연스레 여성인권 활동에 몸담았다고 소개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는 흑백차별이 없습니다. 흑인이 많기도 하지만요(웃음). 인종이나 성에 따른 어떤 차별도 용납해선 안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위대하신 그 분의 섭리입니다.”

그는 11일 강원도 철원의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데 이어 12일에는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을 만난다. 행사 마지막 날인 13일에는 2013년 유엔 여성 지위위원회에 보낼 ‘여성 폭력 추방을 위한 초안’을 채택할 계획이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