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이어지는 제자도
입력 2012-11-11 20:19
여름이면 대학생 신앙수련회를 인도할 기회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바가 있다. 예전에 비해서 우리나라 대학생 신앙운동이 확연히 위축되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에도 지방의 한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다시금 느꼈다. 모인 학생들의 눈망울이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위로가 되는 한편, 영적 부흥에 대한 나의 조급함과 노파심으로 마음이 약간 울적해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 다시 내 마음을 추스르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방식을 잠시 기억했기 때문이다.
1415년은 중세의 개혁가 얀 후스가 허무하게 순교당한 해이다. 종교당국은 개혁가 후스에게 목숨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뒤 그를 유인하여, 결국 ‘이단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명목으로 그를 화형시켰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어떤 역사를 만들어낼지 아무도 몰랐다. 후스는 죽었지만, 후스가 알지 못했던 걸출한 제자들이 나타났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마르틴 루터다. 후스가 죽은 지 약 100년 후 당시의 권력자들은 루터의 작품을 연구한 결과 그의 주장이 100년 전 이단 정죄를 받은 후스의 주장과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루터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이 얀 후스의 제자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후스는 이단이 아니라 옳은 종교 개혁가였다’고 주장했다. 하나님께서 제자도를 이어놓으신 것이다.
후스가 순교한 지 약 300년이 지난 후 얀 후스의 후예들이 독일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에 정착해서 공동체를 형성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얀 후스의 제자였던 코메니우스의 작품을 연구했고 그에 따라 공동체의 원리를 세웠다고 한다. 진젠도르프의 공동체에서는 영적 부흥이 일어나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해외로 파송되었고, 그 공동체의 부흥은 18세기 영국의 웨슬레 부흥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에도 끊임없이 제자도를 이어가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을 믿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중국 청나라 말기 ‘장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노름꾼에다가 호색한이었다. 자기의 시력이 점점 나빠지자 어느 날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에 찾아가 복음을 듣고 회개했다. 장센은 욕을 먹고 침 뱉음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어느 날 의화단원들이 50여명의 성도를 붙잡아 처형하려는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들을 죽여봐야 소용없어요. 장센이 살아있는 한 그리스도인은 자꾸 생겨나니까요!”
그렇다. 예수가 살아계신 한 제자들은 계속 생겨난다. 또 진정한 제자가 있는 한 또 다른 제자들은 계속 생겨난다. 어려운 시기에 나는 이 생각을 하면서 위로를 받았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