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초연… 역동적 무대… 1년 대장정 막 오른 뮤지컬 레미제라블
입력 2012-11-11 18:17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1년간의 대장정에 올랐다. 두 말이 필요 없는 작품의 명성, 첫 우리말 공연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공연장(포은아트홀)이 경기도 용인에 있다는 지리적인 불리함 속에서도 주말에는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찾았다. 지난 3일 프리뷰를 시작한 이번 공연은 한국어 초연작이라는 것 외에도 오리지널 버전과 다른 ‘25주년 버전’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리말 공연의 매력=‘비 내려 거린 흔들린 은빛, 가로등 어른거리는 강물, 어둠 속에 나무들마다 별빛, 그 언제라도 어디서나 너는 나와 함께….’ 낙엽이 떨어지는 스산한 거리, 에포닌(박지연)이 부르는 ‘온 마이 오운(On My Own)’이 가슴을 촉촉하게 만든다. 학생 혁명가 마리우스(조상웅)를 짝사랑하는 마음이 서정적인 한국어 가사로 불려져 감정이입하기가 더 쉬웠다. 영어 가사로 귀에 익은 유명한 곡이라 어색함도 있었지만 우리말로 전달되며 대체로 귀에 쏙쏙 들어왔다. 자막을 보거나, 영어로만 들을 때보다는 확실히 감동이 컸다.
레미제라블은 모든 대사가 노래로 전달되는 ‘송스루’ 뮤지컬. 본래 가사의 묘미를 살리면서 글자수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극작가 조광화씨가 붙인 가사는 문어체 느낌을 살렸고 긴 문장을 밀도 높게 축약했다. 중간 중간 노래가 음향에 묻히거나 배우들의 발음이 뭉개져 가사전달이 안되기도 했지만, 이제 시작인만큼 나아지지 않을까.
◇회전 무대 사라지고, 영상 강조=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의 주목받는 연출가 로렌스 코너는 2010년 영국 초연 25주년을 맞아 새로운 버전을 만들었다. 빠른 전개와 역동적인 무대 변환이 인상적이다.
일단 레미제라블 특유의 회전 무대가 사라졌다. 대신 좌우 양측에 정교한 3층짜리 건물을 세우고, 벽면에 영상을 투사했다. 영상은 공연 내내 단 한번도 멈추지 않고 계속 변한다.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 장발장(정성화)의 독백이나 폭탄이 터지는 장면 등에서는 영상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인물의 심리효과나 극적인 상황을 영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장발장이 다친 마리우스를 들쳐 업고 하수구를 지나가는 장면이나 형사 자베르(문종원)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영상이 빚어낸 하이라이트.
다행스러운 것은 영상이 과도하지 않다는 것. 무대 디자이너 맷 킨리는 “원작자 빅토르 위고가 그린 풍경화 등 잔잔한 그림을 영상으로 활용했다. 영상 때문에 배우에게 가야 할 시선이 빼앗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 무대장치는 ‘계단’으로 배, 바리케이드, 여관 등으로 변형된다. 중세 유럽풍의 다소 어두운 조명 속에 노래 템포는 빨라졌다. 초연될 때에 비해 관객의 일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 이에 맞춘 것이라는 설명이다.
◇배우들의 수준급 실력=배우들의 캐스팅은 최고였다. 주·조연은 물론 앙상블까지 수준급 노래와 연기를 보여줬다. ‘맨 오브 라만차’ ‘영웅’ ‘라카지’의 정성화는 다양한 발성을 실험한다. 내지른다기 보다는 부드러워졌다고 할까. 고음 부분에서 힘을 빼고 부른다. 카리스마 있는 노래를 기대한다면 다소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자베르 역의 문종원은 정성화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에포닌은 뮤지컬 배우면 누구나 꿈꾸는 배역.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인 ‘온 마이 오운’이 에포닌의 솔로곡이기 때문이다. 요즘 뜨는 배우 박지연의 노래와 연기는 매력적이었다.
장발장과 자베르 빼고는 모든 배우들이 앙상블로 참여해 전체적인 실력을 끌어올렸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우선 소리가 작다. 공연장 자체 문제인지, 음향조절 문제인지는 주최 측도 아직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용인이라는 지리적 문제도 평일에 선뜻 예매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포은아트홀 10월 4일 개관… 조명시설 최고 수준
지난달 4일 경기도 용인시 포은대로에 개관한 포은아트홀(사진)은 오페라 뮤지컬 콘서트 발레 등 다양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지하 2층 지상 3층짜리 건물로, 총 면적 4400㎡에 1244석이 마련돼 있다. 용인문화재단 산하의 이 아트홀은 2008년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44개월 동안 617억원을 들여 건설됐다.
최고 수준의 조명기구를 갖추고 있어 공연 성격에 맞는 다양한 조명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분당선 죽전역에서 5∼10분 거리. 개관작인 ‘레미제라블’의 평일 공연은 밤 11시가 넘어서 끝난다. 죽전역 서울 방향 막차는 밤 11시30분에 출발하니 서둘러야 한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