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정욱] 문화와 미국정치

입력 2012-11-11 18:38


미국의 대선이 현직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승리로 끝났다. 이제 각계에서는 이번 대선의 의미를 분석하는 작업이 시작될 것이다. 선발 산업국가의 경우 계급적 이해가 노동자들의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대선 직전까지의 여론조사 지지도에서 오바마는 백인 노동자층에서 밋 롬니에 크게 뒤지고 있었다.

사실 오바마의 피부색은 이러한 지지율 격차와 큰 관련이 없다. 지난 30여년간 백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친노조적이며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정당임을 고려한다면 이렇듯 계급 이익과 배치되어 보이는 백인 노동자들의 정치적 성향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종교와 미국 정치의 연관 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19세기 말 시작된 경제적 변화는 많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거대 조직의 일원으로서 창조성이 결여된 무미건조한 일을 반복하면서 자본주의 경쟁 사회를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또한 냉전이 만들어낸 반공주의에 입각한 정치체제는 문화적 획일성을 증대시키는 토양이 되었다. 무신론을 신봉하는 적에 맞서 종교적 규범의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성적 자유와 ‘일탈’에 대항하는 제도로서 가족이 신성화되었고 이 가족을 지탱하는 전통적 젠더 규범이 의무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규범에 대한 저항이 1960년대에 들어서 대안문화를 통해 확산되었다. 대안문화의 지지자들은 조직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순응의 인간형을 거부하고 물질적 성공을 외면하면서 경제적 규범에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들은 성적 자유를 위시한 사생활의 자유를 옹호하고 개인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새로운 소규모 공동체들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보수적 성윤리, 가족의 신성성, 전통적 젠더 규범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종교적 성향의 문화적 보수주의자들과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이후 민주당 성향의 자유주의자들이 경제적으로 공생을 중시하면서도 사생활의 자유와 문화적 개인주의 성향을 용인하는 반면 자유주의자의 관용이 종교적 규범에 기초한 사회를 파괴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공화당을 지지하게 되었다. 1972년 리처드 닉슨과 조지 맥거번의 대통령 선거전에서 명확해진 이러한 대립 구도는 베이비붐 세대의 문화적 반란을 상징하는 빌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과 더불어 다시금 격화되었다.

노동운동에 의해 조직화되지 않은 종교적 성향이 강한 백인 노동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 미국을 쇠퇴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동성애, 성적 자유 그리고 이를 조장한다고 여겨지는 낙태 등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권리를 중시하는 시대적 조류에 조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문화적 문제들에 대해 보다 중도적 정책을 취하는 공화당 주류파와도 갈등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성애와 낙태 금지와 같은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순교자적 열정을 가진 친공화당 정치적 집단으로 존속하고 있다.

한국 역시 지역정서라는 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경제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투표가 이루어져 왔다. 신중하게 무엇을 생각하는 과정없이 단지 후보자가 어느 지역 출신인지를 고려해 한표를 행사했다. 이념적 경직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이 공화당에 표를 던지는 것은 종교의 권위, 통일된 국가 정체성, 사회적 규범 등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을 옹호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대선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오랫동안 우리의 선거를 지배해 온 지역감정이 무슨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것인지, 그 안에 최소한의 합리성이 존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라는 점이다.

김정욱 고려대 연구교수 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