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계희] ‘술 권하는 사회’ 오명 씻어야

입력 2012-11-11 18:28


우리나라 근대의 탁월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인 현진건은 날카로운 사회비판의식을 담은 여러 작품들을 1920∼30년대에 발표한다. 그중 그의 대표 단편으로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일본 유학을 한 지식인이지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를 괴롭게 하는 것들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사회상과 친일파들, 그리고 사회가 무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식한 그의 아내이다. 어두운 시대상과 불행한 개인사를 극복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사회가 그에게 술을 권한다고 하며 술만 마신다. 당시의 지식인들이 극한의 부조리 상황 가운데 절망과 울분을 달랠 길이 술 밖에 무엇이 있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여성 음주

요즘엔 많은 여성들이 가정생활의 스트레스와 화를 부엌에 숨겨둔 소주 한잔에 찔끔찔끔 풀려고 한다. 이들을 ‘키친 드링커’라고 부른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위험천만한 습관이다. 키친 드링커들의 상당수가 자신과 가족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알코올 중독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남성 가장들의 알코올 의존증은 가족, 특히 어린 자녀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와 불행을 초래하며 심지어 가정을 완전히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

여성 주부들의 음주는 그로 인해 자녀 양육이 전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남성 음주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요즘은 중·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생들조차 체험학습 가서 선생님 몰래 술을 한잔씩 한다고 하니 기가 탁 막힐 일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술 마시게 하는 것일까?

여러 개인적·사회적 문제가 원인이 되겠으나 우선 우리 사회는 유독 술에 관대한 문화를 갖고 있다. 술 먹고 한 실수는 웬만하면 봐준다. 남 앞에서 술 취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서양문화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들은 여하한 상황에서라도 술 마시고 타인 앞에서 실수하는 것을 매우 큰 수치로 여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음주운전 사고, 성폭행 사건과 살인 등에 대한 보도가 신문지상에 도배를 하다시피 하는 요즘, 실제로 이러한 강력범죄자 상당수가 취중에 범죄를 저지른다. 법정에서는 취중 심신미약으로 형을 감하는 것이 우리의 어이없는 현실이다.

최근 일본 우익 단체원들이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의 한국 수학여행을 결사반대하는 시위를 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한국이 성폭행이 만연한 위험천만한 나라이기 때문에 어린 딸들을 한국에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우익이 으레 그러려니 할 문제가 아닌 것이 그들의 주장이 억지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동방예의지국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실제로 성폭행과 연관된 강력범죄의 40%가량이 범죄자의 취중에 일어난다고 하니 화학적 거세나 전자발찌와 신상공개 형 등의 법정처벌에 앞서 우선 술 문화부터 바로잡아 나가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주폭 전과 90범이 출소 후 2시간 만에 다시 잡혀갔다는 웃지도 못할 일이 과연 주폭과의 전쟁으로 해결될 일인가. 언제까지 술로 인한 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학 내 음주 금지 반가운 일

최근 정부가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대학 내 주류 판매 및 음주 금지를 법제화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더 이상 대학 축제마다 술병이 나뒹굴고 캠퍼스 구석구석 쓰러져 있는 학생들을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쌍수로 환영한다. 이왕이면 비현실적으로 낮은 주류의 가격도 올려야 한다. 도대체 세계 어느 선진국에서 알코올 20%의 독주를 단돈 1000원, 1달러도 안 되는 값에 팔게 한단 말인가. 정부가 주류업체들의 영업에 더 신경 쓰는 모습 아닌가. 이젠 술 권하는 이 사회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이계희 경희대 관광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