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시형씨는 강남 스타일
입력 2012-11-11 18:27
내곡동 사저 의혹 특검 수사의 백미는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 소환이었다. 검찰이 서면조사서만 받고 수사를 종료했던 그 시형씨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은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수백명의 취재 기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들과 구경하던 시민들 사이에서는 짧은 감탄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건장한 체격과 짧게 자른 머리에 짙은 감색 양복, 갈색 뿔테 안경이 돋보였다. 이전 대통령의 아들들과는 인상이 달랐다.
시형씨는 ‘강남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10년 전인 2002년 7월 서울시청에서 샌들과 반바지 차림으로 히딩크 감독과 사진을 찍던 24세의 다소 어리숙해 보였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표정은 조금 굳어 있었다. 그렇다고 위축됐거나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강남 어느 곳에서인가 봤음직한 스타일, 아버지는 대통령, 큰아버지는 장롱에 10억 정도는 넣어두는 분이다. 매형들은 재벌가 자제, 변호사, 의사다.
특검 수사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국민들은 시형씨가 주도해서 내곡동 부지를 매입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 법률적인 복잡한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시형씨는 자기돈 한푼 없이 내곡동의 대통령 사저 터를 효율적으로 매입했다. 매입 대금 12억여원 중 6억원은 큰아버지가 차용증 한 장으로 통 크게 현금으로 빌려줬고, 나머지 6억원은 어머니 땅을 담보로 빌렸다. 돈을 빌리는 복잡한 과정, 땅을 찾아보고 계약하는 고민의 과정도 청와대 직원들이 도맡았다.
시형씨 입장에서 보면 특검 수사는 억울한 일이다.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국민 앞에 마치 죄인처럼 비친 측면도 없지 않다. 본의 아니게 아버지 임기 말에 유명인이 돼 버렸고, 유명인이 치러야 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특검이 시형씨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특검과 검찰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종합하면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데, 대부분의 경우 벌금형으로 끝나는 사안이다. 검찰 핵심 간부마저 “간단한 사안이다. 해봐야 부동산실명제이고 그건 벌금 사안”이라고 했다. 범죄행위 자체로만 따지면 가볍다면 가벼울 수 있는 사안인 셈이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왜 이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으로 사저를 매입하지 않았을까라는 점이다. 대통령의 이름으로 계약을 하면 주변 땅값이 뛰어서 계약이 어려워진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그 정도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곳이었던가. 이전 대통령들도 특별한 문제 없이 사저를 매입했다. 아들에게 내곡동 주택을 미리 물려주고픈 단순한 아버지의 배려였을 수 있고, 남에게 말 못할 내밀한 속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대통령의 사저는 전 언론과 사회의 주목을 받는다. 시형씨 이름으로 사저를 매입했을 때 벌어질 문제들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대단한 판단 착오였다.
특검 수사가 종료되더라도 이 의문점은 해결되지 않을 듯하다.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어렵고, 특검도 직접 물어볼 권한이 없다. 이런 ‘사소한’ 사안으로 대통령이 먼저 해명하는 것도 어려울 테니, 참으로 딱한 상황이 됐다.
시형씨가 특검 앞에 선 것도, 검찰이 부실 수사라고 비판받는 것도, 특검을 만들기 위해 여야가 지루한 공방을 한 것도, 특검이 국가 예산을 쓰면서 간단한 사안을 수십일간 수사하는 것도 결국 내곡동 사저를 매입한 ‘주체’들이 간단한 사안을 복잡하게 만든 탓이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