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신데렐라가 되지 말자
입력 2012-11-11 18:27
다들 왜, 어디로 가는 것일까? 파티에 가서 서둘러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얼마 전에도 모 기업에서 주최한 행사에 갔다. 역시 초대한 기업이 남달라서 그런지 멋진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번에 론칭한 브랜드 소개에 이어 간단한 패션쇼가 펼쳐졌다. 마지막 모델이 무대 뒤로 사라지면서 공식 행사는 모두 끝났다. ‘재즈가수의 노래를 음미하며 파티를 즐겨보세요’라고 하는 사회자의 인사와 더불어 불이 켜지자 사람들은 탈출하듯 퇴장했다.
맛있는 음식과 고급 샴페인이 서빙 되고 재즈가수가 낭만적인 노래를 불렀지만 그것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아까웠다. 이런 것을 뒤로 할 정도로 바쁜 일이 있나? 나만 할 일 없이 이렇게 샴페인 잔을 들고 서 있는 것인가? 이때 같이 파티에 온 분이 “몇 달을 준비했을 텐데…”라고 중얼거렸다. 맞다. 행사는 몇 시간이지만 보통 몇 달 전부터 준비한다. 공연, 초대장, 선물 등 세심하게 생각하고 기획하고 여러 부서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한다.
아는 동생은 행사 며칠 전에 공연 팀이 펑크를 내 패닉에 빠졌고 한 친구는 중간에 기획 수정되어 처음부터 다시 하느라 며칠 밤을 사무실에서 뜬 눈으로 지새우기도 했다. 이런 주최 측의 정성을 몰라줘서만이 아니다. 바로 파티를 즐기지 못하고 돌아가기 때문에 안타깝다. 평소에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사람을 한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더 없는 기회인데 모처럼 멋 내고 와서 그냥 가다니 아깝다. 그 이유가 계속 궁금했다.
또 다른 파티에서 사람들이 서둘러서 돌아간 이유를 내 나름대로 찾았다. 바로 구두다. 앞에 너무나 멋진 여성은 눈대중으로 15㎝ 정도의 가늘고 긴 힐에 온몸을 의지해 서 있었다. 물론 가는 그녀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 아무리 지구가 중력으로 당겨댄들 끄떡없을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무릎 꿇고 말 것이다. 힐이 가늘고 높을수록 그 순간이 빨리 오겠지. 부러질 듯 무릎이 아픈데 사람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없을 터. 그러니 서둘러 돌아갈 수밖에.
신데렐라도 요정과의 약속은 핑계고 처음 신은 구두 때문에 발이 아파서 서둘러 뛰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여러분, 다음에는 조금 더 낮고 편한 구두를 신고 와주세요. 준비하느라 수고한 것까지 생각하지 말고 이 좋은 공연과 음식,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마음껏 즐겨주세요. 파티잖아요.
안주연 (웨스틴조선 호텔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