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스마트’씨 하루 24시간 사용한 앱이…
입력 2012-11-10 05:13
“Play the Girls Generation.”(소녀시대 음악을 틀어줘)
바람이 쌀쌀한 출근길.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던 ‘스마트’씨는 추운 날씨에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길 포기했다. 대신 이어폰 마이크로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호출해 명령을 내렸다. 곧바로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역시 출근길엔 신나는 음악이 제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유난히 피곤한 아침이다. 오전 6시에 맞춰 놓았던 스마트폰 알람은 오늘 20분이나 일찍 울렸다. 이 앱은 수면 중 침대의 흔들림을 감지해 지정 시간 전후 30분 사이에서 가장 뒤척임이 심할 때 깨워준다. 밤새 기록된 수면 기록을 보니 그는 숙면을 취하지 못한 채 내내 뒤척였다. 어제 밤늦게까지 이어진 회식 때문이었을 테다. 자동차로 출근하려 했지만 교통정보를 보니 이미 간선도로는 온통 포화상태. 깔끔하게 ‘자차 출근’을 포기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Tell me schedule.”(일정을 알려줘)
음성인식 프로그램은 일과를 줄줄이 불러줬다. 오전 9시 팀 회의, 오전 11시 임원 보고, 낮 12시 점심 약속, 오후 4시 프로젝트 마감…. 당장 임원 보고가 급했다. 지하철 빈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의 웹하드 앱을 켜고 어제 회사에서 미리 저장해둔 보고서를 열었다. 다행히 시간 안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안도감이 든다. 이어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페이스북을 방문한다. 아들 자랑, 대선 예상, 스크린골프 신기록…. 구구절절한 일상을 보며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이번엔 트위터. 직속상관인 부장이 출근길 샐러리맨 생활의 지루함을 토로했다. 주저 없이 RT(공유) 버튼을 누른다. 동감의 표현이자 이 글을 읽었다는 표시다. 요새 한창 주가를 올리는 스마트폰 게임 ‘애니팡’과 ‘드래곤 플라이트’를 켜고 직장 동료와 거래처 직원에게 ‘하트’와 ‘날개’를 보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출근길 ‘접대’는 30여분간 이어졌다.
출근 후 회사 컴퓨터를 켜고 가상화 PC에 접속한다. 어제 작업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서버에 저장돼 있다. 자료들은 회사나 집, PC방 등 어디에서 접속을 해도 편집이 가능하고 실시간으로 저장된다. 어디서나 작업이 가능한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이다. 보안 문제로 파일을 컴퓨터로 내려받지는 못하지만 불편함은 느끼지 못한다.
서둘러 임원회의 보고서 작성을 마친 스마트씨는 화장실에 앉아 회사에서 배포한 앱으로 공지사항을 살핀다. 과거 함께 일했던 상사가 오늘 오전 부친상을 당했다. 일정 앱을 열고 장례식장 방문 일정을 추가했다. 그 순간 바뀐 일정은 구글을 거쳐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에 일제히 저장된다. 바로 ‘동기화’의 마술이다. 동기화는 언제 어디에서나 기존에 하던 일을 이어서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스마트 시대의 핵심 기능이다. 태블릿PC를 들고 간 오후 회의에서도 동기화 기능은 빛을 발했다. 그가 회의 내용을 노트 앱에 적을 때마다 스마트폰, 컴퓨터, 노트북으로 내용이 실시간 전송된다. 회의 내용을 찾기 위해 매번 수첩을 뒤적거리는 번거로움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퇴근 직전 외근을 나갔던 직장 상사가 부서 회식을 소집했다. 회식 장소·시간은 지도와 함께 문자메시지로 전송됐다. 서울 각지로 영업을 떠났던 동료들은 생소한 식당으로 다들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스마트씨 역시 장례식장에 가는 대신 은행의 모바일 뱅킹으로 동료에게 조의금을 보내 전달을 부탁하고 회식에 참석했다.
퇴근 길.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한다. 웹브라우저 ‘크롬’으로 퇴근 직전 회사 컴퓨터로 봤던 뉴스 기사를 이어서 본다. 거래처 직원이 카카오톡으로 피자 쿠폰을 보내왔다. 그는 아마 퇴근길 접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스마트씨의 고단한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집 컴퓨터로 회사의 가상화 PC에 접속한다. 내일까지 마무리할 보고서를 아직 끝내지 못해서다. 일을 마치면 자정이 가까워질 것이다.
스마트 시대는 공간의 벽을 허물어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 동시에 여가와 업무의 경계도 무너졌다. 삶은 편리해진 것 같은데 여유는 더욱 없어지고 있다.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 사용한 앱
◇아이폰 ‘시리’ : 아이폰에 탑재된 음성인식 서비스 ◇슬립사이클 알람 : GPS 센서 인식 인공지능형 알람 ◇서울도로교통정보 : 주요 도로 실시간 교통정보 ◇드롭박스 : 여러 기기와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웹하드 앱 ◇애니팡·드래곤플라이트 :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카카오톡 연동 게임 ◇S플래너 : 갤럭시 시리즈에 탑재돼 있는 일정관리 앱 ◇에버노트 : 여러 기기와 동기화가 가능한 노트 앱 ◇구글 맵 : 구글에서 제공하는 지도 앱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