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흥우] 新청산별곡
입력 2012-11-09 18:18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은퇴 후 제2의 삶을 한적한 시골에서 보내려는 귀농·귀촌이 사회의 새로운 추세로 자리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최근 공개한 ‘2010∼2012 전국 시군구별 귀농귀촌 현황 자료’를 보면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 등에 정착한 이는 올 상반기에만 8706가구(1만7745명)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귀농인구 1만505가구(2만3400여명)의 80%를 넘는 수치다. 2010년엔 4067가구가 시골에 새 터전을 잡았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말까지 5만명 내외가 귀촌이나 귀농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추산이다. 지난 3월 문을 연 농촌진흥청 산하 귀농귀촌종합센터에 하루 평균 100명이 넘는 사람이 문의할 만큼 도시민의 탈(脫)도시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귀농귀촌 인구는 올 상반기를 기준으로 4년 전에 비해 5배 가까이, 11년 전에 비해서는 12배가량 급증했다고 한다. 귀농과 귀촌을 굳이 구분하자면 귀농은 농업을 목적으로, 귀촌은 요양이나 은퇴 후 전원생활을 즐길 목적으로 주거지역을 도시에서 읍·면으로 옮기는 것이다.
잿빛 도시에서 벗어나 녹색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구 감소로 애태우던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귀농인 유치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조례 제정은 기본이고 자금 지원과 귀농학교 운영 등 다양한 유인책으로 예비 귀농인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인구 감소가 심각한 몇몇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정부도 적극적이다. 우선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한 관련 예산을 올해 639억원에서 내년 812억원으로 28% 늘렸다. 또 전국 150여개 기초자치단체와 연계해 정보 탐색에서부터 교육을 거쳐 정착에 이르기까지 3단계 맞춤형 귀농귀촌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주된 이유는 귀농귀촌이 갈수록 고령화하는 농촌 경제를 살리는 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농촌공동화 문제를 해소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귀농귀촌 인구의 급증은 1955∼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 도래했다는 신호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격동기에 태어나 최루가스를 마시며 청춘을 보냈고, 사회에선 무한경쟁의 중압감에 시달리다 어느덧 은퇴의 순간을 맞게 된 것이다. 앞만 보고 치열하게 살아온 고단했던 지난 삶에 대한 위로와 안식을 자연에서 찾고자 농어촌을 새 보금자리로 삼는 이들이 느는 것 같다.
‘저녁이 있는 삶’-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며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손 전 지사가 경선에서 패하는 바람에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밤을 낮 삼아 일하는 이 시대 모든 이들이 꿈꾸는 삶일 것이다. 퇴직한 뒤에나 그런 삶을 누린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그래도 이 경우는 행복한 축에 속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게 속 편하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까닭이다.
은퇴 갈림길에 서 있는 베이비부머는 710여만명(2010년 기준)에 이른다. 전체 인구의 약 14∼15% 수준이다. 올 한 해에만 이들 가운데 47만여명이 퇴직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선진국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열악하다 보니 노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이가 무시해서는 안 될 수준이라는 점이다.
젊어서는 사서라도 고생할 수 있지만 노후만은 보다 인간답고, 여유롭게 유유자적하며 보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다음 달 실시되는 18대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주요 후보들이 현 정부에 비해 복지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흥우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