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11일] 죄인을 부르는 예수님
입력 2012-11-09 17:42
찬송 : ‘나의 죄를 씻기는’ 252장(통18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9장 9∼13절
말씀 : 한국 사회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양극화 현상입니다. 이 양극화는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에 발생합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다양한 갈등이 존재하게 됩니다. 교회는 양극단적인 세상에 뛰어들어가 서로를 화합시키고 하나 되게 하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나뉘었을지 몰라도 같은 교회 안에서는 진정한 하나 됨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이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오셨습니다. 주님은 분명한 사명을 가지셨고 그 사명에 맞추어 일관되게 사역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 안에 있는 특권의식을 깨뜨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죄인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을 보면서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11절). 예수님 정도 되신 분이라면 자신들과 식사하고 교제하는 것이 합당한데 그렇지 않은 예수님의 태도에 불쾌함을 가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의식이 있는데 어떤 때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낫다는 잘못된 의식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특권의식에 빠지게 되면 잘못된 생각과 판단을 내린다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던 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더 나은 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의보다는 상대적인 의를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적인 눈으로 우리를 보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똑같습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세리와 죄인들의 죄가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 눈의 티는 보고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하나님의 말씀과 종교적 행위로는 하나님과 가장 가깝다고 자부하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기간 동안 수도 없이 그들을 책망하고 깨우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에게는 들을 귀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보거나 들을 때 남의 이야기로 듣는 타성을 버리고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 우리에게는 주님이 꼭 필요합니다. 본문에서는 세리와 죄인들, 바리새인 모두 죄인으로 취급합니다.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13절). 그런데 자신의 죄를 깨닫는 사람만이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12절). 때로는 육체적 질병으로 병원과 의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듯이, 영적 질병인 죽음에서 건짐 받고 복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의사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어떤 순간, 어떤 문제이든지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을 입기 위해 간절히 주님을 찾는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 주님, 허물 많고 부족한 저의 죄를 깨닫게 해주시고 오늘도 주님이 필요함을 알아 늘 도움 받아 사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창근 목사 (서울 광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