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답은 관계다
입력 2012-11-09 17:47
살면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관계가 답이다.” 관계를 이어나가고 보듬어가기 위해 늘 손해 보고 참고 양보하는 선택을 한 어머니의 삶이, 딸인 제게는 답답해 보였습니다. 재능 많은 어머니가 그냥 아내로, 엄마로, 사모로 그림자처럼 사는 것이 내내 안타까웠습니다. “난 저렇게 살지 않을 거야!” 그래서 어린 날의 전 언제나 제가 먼저였습니다. 내 것을 챙기고 내 일을 하고 내 마음을 수습하는 것이 제겐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러다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나이 드신 부모님의 버팀목 같은 딸이 되고 며느리가 되고,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먼저 살아가며 길을 밝혀주는 선생(先生)이 되고… 그리 관계하다보니 손해 볼 일도 참고 양보해야 하는 일도 내가 짊어져야 할 일도 많아진 삶을 살다가, 언젠가는 문득 억울해지기도 했었습니다. 난 왜 나를 돕는 이보다 도와야 할 이들이 더 많은 거냐고 따지듯 하나님께 여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를 지나오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그들이 실은 내가 오늘 하루를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그 관계를 지켜내고 살려내고 보듬어내고 자라게 하느라 애쓰는 동안 나는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더군요.
어머니가 옳았습니다. 답은 관계에 있었습니다. 혼자 뛰면 더 잘 뛸 것 같지만, 나만 챙기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람은 그리 지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언제나 나의 동력은 ‘너’라는 것을… 그게 연인이든 아가든 형제자매든 부모님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나와 관계하는 ‘너’로 인해 오늘 그치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일어나기 싫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고 하루를 살아낼 용기를 냅니다. 어쩌면 ‘책임’은 관계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책임으로 우리는 또 하루를 너끈히 살아낼 겁니다.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