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칼럼] 불가능의 가능성
입력 2012-11-09 17:49
필자가 속한 교단은 목회자들의 최저생활비를 보장해주는 생활보장제를 실행하고 있다. 총회 생활보장위원회는 매년 목회 현장에서 일하는 목회자들의 최저생활비를 책정하고 목회자가 섬기는 교회가 최저생활비에 못 미치는 생활비를 제공할 경우 부족한 액수를 지원해주는 제도다. 이를 위해 목회자들은 본봉의 5%를 매월 생활보장제 계좌에 의무적으로 송금해야 한다.
필자가 속한 교단에서 이 같은 제도가 도입된 시기는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현상은 양극화였고 한국 교회도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대형 교회가 생겨남에 따라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의 양극화가 첨예화됐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젊은 목회자들은 최저봉급제도 도입을 수년에 걸쳐 그들이 속한 노회를 통해 총회에 헌의함으로써 총회가 이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필자가 뜻있는 목회자들과 함께 이루었던 이 경험을 언급하는 것은 그 이후에 겪었던 충격적인 경험을 나누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자 함이다.
필자는 1980년에 독일 교회의 초청을 받아 6년 동안 바덴주지역교총회 선교 동역자로 일한 바 있다. 필자의 충격은 독일 교회 안에 정착되어 있는 봉급 평준화의 현실을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독일 교회 목회자들은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호봉제에 의한 동일한 생활비를 받고 일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능력이 탁월한 목회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중수입이 불가능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이런 독일 교회의 구조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거쳐 국민교회(Volkskirche)로 뿌리내린 교회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비록 이들은 매주 교회에 출석하지는 않을지라도 매월 그들의 수입의 소득세 8∼10%를 종교세로 납부한다. 주(州)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는 종교세를 주정부의 세무소는 종교세의 1%를 비용으로 제하고 나머지는 주 지역 총회로 보낸다. 이 종교세를 바탕으로 각 주의 총회들은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평균하여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 운영은 독일 모든 주 지역 총회들이 합의하에 목회자가 되는 길을 통일시켜 놓은 바탕에서 가능하다. 목회자 후보생들은 6년 동안은 국가가 운영하는 대학교의 신학과나 교회가 운영하는 신학대학에서 신학 이론을 공부할 수 있다. 신학이론 과정을 마친 목회자 후보생들은 그들이 속한 주 지역 총회가 주관하는 시험에 응시해야한다. 주 지역 총회들은 신학 이론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목사수련원(Predigerseminar)을 통해 3년에 걸쳐 목회자가 되는데 필요한 교육을 실행한다. 이처럼 긴 교육과정을 마치기까지는 9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필자가 소개한 독일 교회의 현실과 우리나라의 교회 현실은 판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경험을 나누는 것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한국 교회가 직면해 있는 문제를 목회자들의 봉급 평준화의 꿈을 통해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봉급 평준화 도입을 위해서는 매년 313개 신학교에서 1만5000명씩 배출되는 목회자들의 문제를 공교회들이 최소한 목회자가 되는 기준과 수준을 합의하는 일이 선결돼야 할 것이다. 봉급 평준화가 도입되면 날로 심화되고 있는 대형 교회와 소형 교회의 양극화도 극복될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는 세속화의 거대한 힘에 맞서 세상을 이끌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봉급 평준화를 통한 한국 교회의 질적 향상과 위상 회복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죄성 때문에 불가능하고, 이미 회복 불가능한 질곡 속에 빠져든 한국 교회를 개혁하는 일은 이미 인간들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선 생활보장제를 실행하고 있는 교단들이 봉급 평준화의 목표를 바라보면서 조금씩 생활보장제 수준을 높여가는 방식으로 먼 미래를 준비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불가능하더라도 지금부터 꿈꾸고 미래를 내다보며 준비하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가능한 현실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포예원교회목사·한국기독교목회자협상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