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작품은 지금 읽어도 낯설다

입력 2012-11-08 18:28


“나는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지 못하는 복수, 이 속에서 호흡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지금 희망한다. 그것은 살겠다는 희망도 죽겠다는 희망도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 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무서운 기록이다.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

1930년 스무 살의 이상(李箱)이 조선총독부 건축기사 시절, 서울 의주통 공사장 감독관실에서 쓴 소설 ‘십이월 십이일’의 한 대목이지만, 이 말은 한국문학의 현대성을 알리는 일종의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소설을 시작으로 이상은 겨우 27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13편의 소설을 남겼다. 그저 일상의 변죽을 울릴 뿐 어떤 이념이나 가치, 줄거리마저 없는 이상의 소설은 지금 읽어도 낯설다. 단지 자신만의 특수한 시각, 사물에 대한 지각에 충실하다는 점이야말로 모더니스트 이상의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이상 소설 전집’이 출간 15년을 맞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번’으로 출간됐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가 1930년대 문학잡지에 수록된 이상의 작품 원전을 한 자 한 자 대조해 오늘의 독자들이 읽기에 무리가 없도록 문장 부호나 마침표, 말줄임표 따위를 손질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백 번째 책들은 모두 한국문학이다. 100번은 ‘춘향전’, 200번은 ‘홍길동전’이다.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목록에 한국문학을 포함시키자는 발상 자체가 신선하다. 목록에 보면 10번이 ‘한국단편문학선1’, 20번이 ‘한국단편문학선2’, 72번이 ‘구운몽’, 204번이 ‘금오신화’, 250번이 ‘무정’이었다. 한국의 고전문학과 근대문학을 끼워 넣어 세계문학전집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300번을 ‘이상 소설 전집’으로 정한 것은 이상 문학의 현재성이야말로 세계문학의 층위에 갖다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민음사 측은 “앞으로도 한국의 시조나 희곡 등을 추가해 세계 속의 한국문학을 지향하는 전집을 꾸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