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FCTC 총회와 금연 선진국
입력 2012-11-08 18:30
오는 12일부터 엿새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제5차 당사국 총회가 열린다. 전 세계 176개 회원국 대표단과 국제기구·비정부기구 인사 등 1000여명이 참석하는 큰 행사로, ‘금연 올림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년마다 열리는 이 총회는 각국의 금연정책 성과를 공유하고 협약 이행을 점검·촉진하는 자리다.
FCTC는 담배가 인류에 미치는 해악에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2003년 WHO 총회에서 채택된 국제 협약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 5월 협약을 비준했다. 회원국들은 협약 비준 3∼5년 내에 FCTC가 권고하는 각종 담배 규제 방안이나 가이드라인을 이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금연구역·금연클리닉 확대, 담뱃값 인상, 담배 광고·판촉·후원활동 금지 등 금연정책을 꾸준히 실행해 왔다. 지난 9월엔 ‘담배경고 그림 도입’ ‘오도(誤導) 문구 삽입 금지’ 등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았던 금연정책들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도 입법예고했다. 덕분에 성인 남성 흡연율은 2001년 69.9%에서 2007년 45%로 떨어졌고 금연에 대한 국민 인식도 상당히 높아졌다. 하지만 성인 남성 흡연율은 되레 48.3%(2010년 기준)로 올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금연정책의 약발이 현실에서 제대로 먹히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그간 중점을 둬 온 금연구역 정책을 보자. 2010년 5월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길거리·광장·공원 등 공공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지난 2월 말 조사에 따르면 전국 244개(광역 16, 기초 228) 지자체 중 34.8%(85개)만이 금연 조례를 제정했다. 또 서울 등 일부 지자체는 강력하게 규정 위반을 단속하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곳이 많다.
흡연율 감소 효과가 입증된 담뱃값 인상 문제도 녹록지 않다. 복지부는 2004년 2500원으로 인상된 후 정체된 담뱃값을 대폭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지만 정치권과 관계부처, 반대 여론에 밀려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연구 결과 금연구역 확대 등 비가격정책과 함께 담뱃값이 최소 4500원이 돼야 2020년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의 목표인 성인 남성 흡연율 29%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복지부는 앞으로 담뱃값 인상을 계속 추진할 방침이지만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또 하나는 FCTC가 포괄적 금지를 권고하고 있는 ‘담배 광고·판촉·후원 활동 금지’ 조항이다. 우리나라도 이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지만 담배회사 기업 광고에 대한 명시적 규제 조항이 없어 분쟁의 소지가 있다. 또 매체의 다변화로 제휴·문화마케팅 등 새로운 판촉 방식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처도 미흡하다. 최근엔 담배회사들이 독립법인을 세우거나 제3의 기관을 통해 간접 후원하는 방식의 마케팅도 활발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규제 조항도 마땅치 않다. 사회적으로 담배회사의 후원활동을 긍정적인 사회공헌활동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형성돼 있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이번 FCTC 당사국 총회 개최를 계기로 올해를 ‘금연 선진국’ 도약 원년으로 삼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금연 선진국은 단순히 행사의 성공 개최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미진한 금연정책을 다시 한번 두루 살펴보고 실효성 있게 추진하는 노력이 따라줘야 한다.
민태원 정책기획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