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왜 투구게는 살아남고 공룡은 사라졌나…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향한 탐험’
입력 2012-11-08 21:28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향한 탐험/글·사진 피오트르 나스크레츠키/글항아리
매년 5∼6월 초승달이나 보름달이 뜬 밤이면 미국 북동부 해안인 델라웨어 만에서는 수천 마리의 투구게(horseshoe crab)들이 모래를 헤치며 해안가로 기어오르는 장관을 연출한다. 3㎏이나 되는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암컷 투구게의 꽁무니엔 서너 마리의 수컷 투구게가 뒤따르고 있다. 해가 완전히 저물면 해안가는 반짝이는 등딱지를 지닌 거대한 투구게의 행렬로 붐빈다. 둥지 하나마다 4000여 개의 알이 채워지면 수컷은 체외수정을 위해 서로 몸싸움을 벌인다.
투구게의 이 특별한 산란행동에서 우리는 그들이 살았던 중생대의 바다가 얼마나 위험한 곳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투구게는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생물보다 이 지구 위에 더 오랜 시간 존재해왔다. 4억4500만 년 전인 고생대의 오르도비스기에도 투구게는 존재했다. 투구게는 2억4500만 년 전, 공룡이 지구를 지배할 당시에도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잔존생물(relics)’인 것이다. 투구게는 잡식성인데다 필요하다면 물 밖에서 몇 날 며칠을 견뎌낼 수 있다. 몸을 감싸고 있는 튼튼한 갑옷 덕분에 투구게는 천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구엔 투구게와 같은 잔존생물로 넘쳐난다. 실제로 대부분의 동물군들은 5억5500만 년 전의 캄브리아기(고생대의 가장 오래된 시기)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소위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라고 불리는 시기에 수백 종의 동물 원형이 새롭게 진화했던 것이다. 벌레, 해면동물, 갑각류, 연체동물, 극피동물, 심지어 인간이 속한 척추동물까지 바로 이 시기에 등장했다.
시간을 앞으로 돌려보면 현재 살아 있는 동물들과 놀라울 만큼 비슷한 생물들이 화석 기록에서 발견된다. 순수한 의미의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생물들은 한때 대규모의 다양한 종들이 있었으나 멸종하고만 동물군 중에서 살아남은 생물들인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듯 보이는 숲의 일부 지역은 실은 이차림(二次林)이며 산악지대의 수많은 비탈면은 고대 농경의 관습으로 재형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오세아니아 북서부에 있는 뉴기니의 밀림은 전 세계의 그 어느 곳보다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 시대의 자연 환경에 가깝다.
그곳에서 우리는 최초의 노래하는 곤충과 사촌지간인 산쑥메뚜기의 날개 형태에서 곤충이 부르는 노래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또 소철류가 품은 독성을 통해 태곳적 초식동물이 식물에 가한 엄청난 적응 압력의 증거도 발견할 수 있다. 물속새 수풀은 백악기(중생대 말기)의 숲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살짝 보여주며, 바퀴벌레는 그 헌신적인 모성애로 곤충이 복잡한 사회를 꾸리게 된 진화 역사의 단편을 보여준다.
이들 잔존생물은 지구 위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근근이 생명을 이어온 역사의 한 조각에 가느다란 빛을 비추는 존재다. 책을 펼치면 원색의 도판들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우리를 쥐라기(중생대 중기) 혹은 그 이전으로 데려간다. 곤충학자이자 사진가인 저자는 현재 미국 하버드대 비교동물학박물관 전임연구원. 지여울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