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석운] 구호 수준에 머문 공약들

입력 2012-11-07 19:45


국민일보는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세 대통령 후보에게 최근 몇 차례 서면질의서를 보냈다. 질의서를 처음 보낸 건 지난달 11일이었다. 그때까지 어느 후보도 종합적이거나 구체적인 공약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었다. 질의서를 보낸 이유는 대선주자들의 정책대결이 실종된 데에 언론의 책임도 일부 있다는 자성 때문이었다.

질의서는 세 가지 원칙을 담아 작성했다. 첫째, 두루뭉술한 답변이 나오지 않도록 한다. 둘째, 세 후보 간 차별화가 이뤄지도록 한다. 셋째, 후보별 평가를 하거나 순위를 매긴다. 이를 위해 주제를 몇 가지로 한정했으며 문항마다 구체적인 정책목표와 재원조달방법을 제시해줄 것을 요구했다.

정책목표·재원조달방법 미비

복지 분야의 경우 노인빈곤과 의료양극화에 초점을 맞췄고 교육 분야의 경우 반값등록금과 학교폭력에 국한했다. 환경은 원전과 에너지 분야만 물었다. 각 후보 캠프는 번번이 국민일보가 제시한 마감일을 넘겼지만 주제별로 10가지 문항을 담은 질의서를 검토한 뒤 빼곡히 작성한 답변서를 보내왔다.

서면 질의가 후보를 직접 인터뷰한 것이 아니어서 육성과 진면목이 드러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캠프마다 포진한 전문가들이 상의해서 답변서를 작성한 것이어서 후보들의 철학이 반영됐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막상 답변서를 받아보니 실망스러웠다. 답안지의 양은 두툼했으나 내용이 부실했다.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으며 심지어 ‘추후 답변하거나 공개하겠다’는 식으로 넘어간 문항이 많았다. 재원조달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세 후보 모두 거의 예외가 없었다.

답변서를 분석한 국민일보 대선평가단의 반응도 냉담했다. 박 후보에 대해서는 국가장학금 확충방안이 재정에 주는 부담을 고려한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지만 재원조달계획이 엉터리라는 지적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재정전문가는 “한마디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고 일갈했다.

문 후보가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안을 제시한 것은 구체성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지적을 받았다.

평가단과 기자들의 반응이 가장 차가운 후보는 의외로 안 후보였다. 복지와 교육 부문에 대한 질의서를 작성할 때만 해도 안 후보의 답변이 상대적으로 돋보일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막상 받아본 안 후보의 답변은 매번 상대적으로 가장 부실했다. 답변을 생략한 질문이 많았으며 그나마 답변한 내용 중에는 추상적이거나 일반론적으로 흐르는 답변이 적지 않았다.

평가단 중에는 “(노인복지 정책에서) 안 후보의 숨어 있었던 보수성이 드러난 것이거나 경험 없는 정치가인 점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라고 평가서를 적어낸 위원도 있었다.

앞으로 정교한 방안 내놔야

물론 반론도 있었다. 안 후보는 진용을 갖춘 지 얼마 되지 않은 무소속 후보여서 두터운 전문가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소속 후보들과 같은 반열에 놓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었다. 실무자들이 대필한 답변서를 가지고 후보들의 비교우위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장관이나 참모들의 도움 없이 국정을 혼자 운영하는 경우가 없듯이 대선 후보가 유능한 보좌진을 갖추지 못한 것은 결격 사유이지 핑계거리가 될 수는 없다. 대선 후보들이 오는 25∼26일로 예정된 후보 등록 전후로 좀 더 정교한 공약들을 내놓기를 기대해본다.

전석운 정책기획부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