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법원은 훌륭한 판례 많이 남겨야
입력 2012-11-07 18:55
횡성 한우 사건 2심 판결을 했던 판사가 자신의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을 비판하는 글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렸다. 가짜 횡성 한우를 판 농협 간부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는데도 대법원이 교조주의에 빠져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3심제가 기본인 사법체계상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나름 이유 있는 항변이라고 본다.
쟁점은 다른 지역에서 낳은 한우를 횡성에서 1∼2개월 키웠다고 ‘횡성 한우’라고 할 수 있느냐 여부다. 대법원은 먹인 사료 등을 개별적으로 따져 짧은 기간이라도 이곳에서 키웠다면 횡성 한우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유죄를 선고한 판사는 소가 팔린 지 한참 지나 개별적으로 조사가 불가능한 만큼 농산물품질관리법의 입법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가 지역을 떠나 사육·도축된 경우 어느 정도이면 옮겨간 지역의 원산지를 표시할 수 있는지 규정이 없어 발생한 일이다. 지난해 5월부터는 해당 지역에서 도축일을 기준으로 12개월 이상 사육돼야 원산지 표시를 받을 수 있다. 입법적으로 논란거리가 깨끗이 해결된 셈이다.
문제는 이번 경우처럼 대법원이 글자로 추상화돼 있는 법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적용해 파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미 도축돼 없어진 소가 무엇을 먹었으며 도축까지 어떻게 관리됐는지 밝히기는 지극히 어려운데도 이를 밝혀 판단을 다시 하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행위를 하급심에 요구하는 것이다. 행정규제의 틈을 이용하거나 남용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도 판사의 몫일진대 이를 스스로 포기한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했으면 한다.
더구나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이 농산물원산지표시의 의미를 잘 아는 농협 간부들이란 점을 감안하면 항소심 판사의 주장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입법미비를 이용해 평범한 소를 브랜드 가치가 있는 소로 둔갑시킨 행위를 그냥 둘 순 없기 때문이다. 행정벌이 아니라 형사처벌을 내릴 때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대법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지만 아쉬움이 크다.
법원의 장자인 대법원은 사실관계 파악보다는 법률 적용의 오·남용을 따져 하급심의 판결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막강한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법률을 적용해 교조주의란 지적을 받지 말고 좀 더 차원 높은 판례를 많이 생산하는 데 주력했으면 한다. 사법 100년이 지나도록 국민의 기억에 남는 감동적인 명 판결이 드문 것이 사법 불신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대법원도 잘 알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법부가 보다 수준 높은 논쟁을 통해 법의 허점을 남용하는 사람을 엄벌하는 동시에 귀감이 될 판례를 많이 만들어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