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임장혁] 섣부른 항공시장 개방 안된다

입력 2012-11-07 19:44


저가항공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아일랜드 국적의 라이언에어는 지난해 전년 대비 5% 증가한 7600만명을 수송해 43억25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매출액보다 1.15배 많은 규모다.

그러나 가격이 싸다고 고객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좌석 지정제가 아니기에 탑승 전 게이트가 확인되기도 전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환불, 변경 조건이 까다롭고 불편하다. 체크인 및 탑승권은 인터넷을 이용해 출력해서 수속준비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수화물은 추가요금을 내야 하고 기내서비스는 없다.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을 감사해야 하는 정도다. 한국 저가 항공사에서 별도로 요구하지 않는 비용을 외국 항공사에서는 추가로 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의 저가 항공기 이용 승객은 전년 동기보다 31% 증가한 627만명에 달한다. 또 국내 최대 저가 항공사인 제주항공의 같은 기간 매출액은 1559억원으로 1년 전(1095억원)에 비해 42.3% 증가했다. 이는 반기 기준으로 제주항공의 최대 실적이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16억원)보다 줄어든 6억원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정치권 및 지방자치단체들은 시장개방을 통해 해외 저가 항공사를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방공항 살리기와 국내 저가 항공사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항공시장 개방화는 상당한 대비가 필요하다. 유럽연합(EU)의 항공시장 개방 이후 이 지역의 유수 항공사가 도산 또는 인수·합병됐고, 기존 항공사들은 저가 항공사의 가격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과 같은 국가에서는 계속되는 저가 항공사의 공세에 자국적 항공사가 도산해 주요 공항을 저가 항공사에 내줬다.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공항은 2007년 국적항공사 슬로박항공의 파산 이후 저가 항공사 터미널로 전락해 현재 유럽 지방공항과 브라티슬라바를 운항하는 외국계 저가 항공사들만 취항한다. 이로 인해 여객과 화물 수송의 중추인 수도 공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장거리 항공여행 및 화물수송은 인접국인 오스트리아의 비엔나공항에 의존한다.

아시아 최대 저가 항공사인 에어아시아의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지난 7월 방한했을 때 에어아시아가 2010년 11월부터 인천∼쿠알라룸푸르 노선에 취항 중인 만큼 추후 초저가 공세를 통해 시장개척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국내 저가 항공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한 국내선과 한국 발 해외노선 가격 경쟁에서는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경쟁할 만하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 진출한 에어아시아 같은 외국계 순수 저가 항공사는 이미 일본항공과의 제휴를 통해 한국∼일본 간 운항을 목전에 두고 있고, 2016년부터 순차적으로 신규 항공기 200여대를 전 노선에 투입할 예정이어서 전략·규모 면에서 국내 저가 항공사와의 격차가 큰 상황이다.

국내 항공시장 개방에 대한 우리 항공산업의 경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중·장거리 노선에 집중해 동북아시아의 프리미엄항공사로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 국내 저가 항공사들은 외국계 저가 항공사의 가격경쟁이 무한경쟁체제에 돌입한 만큼 단기적으로는 저가정책을 통해 승부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일반 항공사와 저가 항공사의 수익모델을 혼합한 중가 항공사로 체제를 전환해야 한다.

임장혁 퀴네앤드나겔㈜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