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관광정책 또 인수위에 맡기나

입력 2012-11-07 19:32


관광산업은 흔히 오케스트라에 비유된다. 오케스트라가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등 모양도 다르고 소리도 다른 악기들의 집합체인 것처럼 관광산업도 숙박, 음식, 축제, 컨벤션, 운송, 레포츠, 여행 등 서로 다른 분야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관광과 문화, 관광과 의료가 결합하는 등 관광의 외연이 확대되면서 ‘일상 밖은 모두 관광’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을 40여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의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정책공약은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그러나 관광은 특별히 이해가 맞서는 분야가 아니라서 공약으로 채택되는 경우가 드물다. 대신 각 후보의 선거캠프와 당선자 확정 후 가동될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차기 대통령의 통치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새 정부의 관광정책을 조율하게 된다. 실제로 각 후보 캠프에서는 전문가로 불리는 관광학과 교수 등이 자천타천으로 새 정부의 관광정책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문제는 밀실에서 짧은 시간에 그려지는 밑그림은 완성도가 높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첨예한 정책공약은 여론의 검증 과정을 거쳐 수정되고 보완되지만 캠프나 인수위에서 마련된 관광정책은 공약이 아니라 위원들의 개인적 성향이나 관심에 영향 받을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 정권에서 쓰임 받지 못한 ‘폴리페서’가 새 정권에서 한자리 차지하려는 한풀이 마당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현 정부는 출범 초기에 민간의 역할을 중시하는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정책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한국관광공사의 관광지 개발 기능을 대폭 축소했다. 이미 그려진 밑그림대로 관광공사는 마케팅에 주력하고 관광지 개발 사업은 민간에 넘긴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민간은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덕분에 반세기 동안 축적된 공사의 개발 노하우는 사장되고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들은 개발을 못해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공기업 선진화 차원에서 추진 중인 관광공사의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 철수 방침도 정권 말기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익금이 공적인 용도로 쓰이는 관광공사의 면세사업권을 환수해 민간에 넘긴다는 발상은 자칫 특혜 논란으로 이어져 정권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업계의 이익을 대표하는 이익단체가 민간의 탈을 쓰고 공공기관의 고유 업무를 가져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모두 인수위가 전 정권의 치적을 부정하는 차원에서 일부러 공공기관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들이다.

관광산업의 경우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한국관광공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등 관광정책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기관들이 있다. 정권이 바뀐다고 정부의 공식 기관을 부정하고 비선에 의존한다면 더 이상 한국관광의 발전은 없다.

캠프나 인수위에서 밑그림을 그리는 전문가들은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처럼 한 분야의 전문가일 뿐이다. 바이올리니스트가 트럼펫을 연주할 수 없듯이 한 분야의 전문가는 다른 분야의 비전문가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같은 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캠프나 인수위에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숲’을 보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아울러 관광산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 판을 짜야 하는 분야는 아니다. 관광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자율적으로 굴러간다. 볼 것 없고 즐길 것 없는 곳에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관광객들이 몰리지는 않는다. 공연히 설익은 정책으로 정권이나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시장원리에 따라 굴러가도록 관망하면서 격려하는 것이 오히려 상책이 될 수도 있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