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올레길 안전단말기
입력 2012-11-07 19:32
지난 주말 회의 참석차 제주도에 간 김에 올레길이란 곳을 처음 가봤다. 우리나라에서 걷기여행 붐을 일으킨 현장이기도 하고 2007년 9월 올레길이 명명된 뒤 몇 번 갈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던 터라 때늦은 견학에 나름 기대가 컸다.
금요일 오후, 때마침 ‘2012년 올레 축제’ 기간이었지만 견학차 간 19번 코스는 한산했다. 일정에 쫓겨 1시간 남짓밖에 체험하지 못했기에 단정하기는 좀 그렇지만 맑은 가을날에 비해 여행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해양경찰부대 철조망 옆을 끼고 좁다랗게 올라가는 길 입구는 안내판을 비롯해 올레길을 상징하는 리본도 잘 보이지 않아 길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혼자였다면 불안감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더구나 여성 혼자라면…, 불길한 생각이 앞섰다.
물론 과잉반응이다. 그것은 순전히 지난 7월 벌어졌던 올레길 살인사건 탓이다. 하긴 ‘한번 일어난 일은 또 벌어진다’는 일본 속담도 있으니 이미 벌어진 사건을 모른 체할 수만은 없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느냐’는 우리 옛말도 있지만 여행길·휴양지에서의 안전성은 이제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됐다.
사건이 벌어진 직후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그건 좀 아니다.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나 차분한 시간을 즐기려는데 도심에서 매일매일 수도 없이 찍혔던 CCTV에 또 노출돼야 한다는 건 걷기여행의 본질을 깨뜨리는 처사다.
㈔제주올레 홈페이지에 ‘길동무 신청 코너’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한 듯하다. 위치추적 및 긴급연락 장치를 단 가칭 ‘올레길 안전단말기(STU·Security Terminal Unit)’ 보급은 어떨까. 외부에서 제주도로 들어오는 공항과 항만에 누구든지 STU를 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올레길 출발지점에서 STU를 작동해 진입을 알리고 비상시에는 버튼을 눌려 경찰과 바로 연계할 수 있도록 한다면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도보용 내비게이션까지 장착하면 길 찾기에도 도움이 될 터다. 처음 도입은 조금 번거롭겠지만 STU의 등장은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휴양지의 안전성은 올레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몸과 마음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걷기여행은 지리산 둘레길, 남해 지겟길, 무등산 옛길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엔 노년을 농촌에서 지내겠다는 귀농도 늘고 있다. 요즘 기술이라면 STU 도입, 못할 것도 없을 텐데.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