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2기 미국 어디로-(1) 재선 의미와 과제] ‘재정지출 감축’ 의회 설득 첫 시험대
입력 2012-11-07 21:39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무난히’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그와 민주당이 주창해 온 ‘진보 노선’이 추진력을 얻게 됐다. 선거 과정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확연히 다른 철학과 세계관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줬다. 특히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냈다.
오바마의 승리는 사회적 약자 보호와 경제 회복을 위해 정부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큰 정부론’에 대해 미국인들이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전 국민을 공공보험 체계에 편입하겠다는 건강보험개혁법안(오바마케어)이 안정적으로 추진되게 됐고, 2008년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한 월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금융개혁안(도드-프랭크법안)도 결실을 보게 됐다. 실업률이 8%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도 연임에 성공한 것은 미국인들이 ‘시간이 걸리지만 경제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오바마의 주장을 신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인단 과반 확보는 물론 전국 득표에서도 롬니 후보를 누름으로써 향후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하원)와의 관계 설정과 각종 정책 추진에 일단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오바마 선거 캠프는 내부적으로 선거 1주일 전부터 선거인단 확보는 거의 확실한 것으로 판단했고, 전국 득표 승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초선이 아니라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 가운데 전국 득표에서 뒤지고 당선한 이는 아직까지 전무하다. 2000년 앨 고어에게 전국 득표에서 뒤지고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조지 W 부시 당시 공화당 후보는 초선에 도전 중이었다. 오바마가 전국 지지율이 뒤진 채 재선에 성공했을 경우 이미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어온 공화당의 공세로 거의 4년을 ‘레임덕’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AP통신은 분석했다. 일단 오바마로서는 높은 실업률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최선에 가까운’ 결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유세장에서 다시 워싱턴DC로 돌아온 오바마 대통령이 기쁨을 만끽할 시간은 며칠 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재정절벽(fiscal cliff)’이다. 올 연말까지 양당 간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미국 정부는 내년 1월부터 향후 10년 동안 7조 달러 규모의 세금 인상과 지출 감축을 단행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공화당이 다시 하원을 장악한 의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4년 임기 내내 오바마가 맞닥뜨릴 중대한 도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년간 오바마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정책 어젠다에 대해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던 공화당이 앞으로는 태도를 바꿀 것이라고 보는 분석가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조세 제도와 정부지출 감축 문제에 대해 공화·민주 양당의 시각차가 현격해 이 문제가 오바마의 리더십을 시험하는 첫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화당도 오바마의 재선을 막아야 한다는 ‘지상 목표’가 사라진 만큼 지난 4년처럼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달 아이오와주 최대 신문 ‘데스모인스레지스터’와 비보도를 전제로 한 인터뷰에서 조세개혁 등 현안에 이념적으로만 접근하지 않을 것이며, 재정적자 문제에 대해서도 6개월 안에 대타협(grand bargain)을 이룰 것이라고 털어놔 첫 임기 때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보스턴글로브는 ‘거대한 균열(great divide)’이라고 불리는 인종, 성, 소득, 소속 정당에 따른 미국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를 치유하는 것이 오바마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바마가 전국 득표에서 박빙으로 이기긴 했지만 열정적으로 롬니 후보 지지를 표시한 미국인들이 50%에 가깝다는 것을 제2기 오바마 행정부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재선 성공과 갈수록 나아질 가능성이 높은 경제 상황을 발판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남미계 주민들의 숙원인 이민법 개혁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