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7일] 무엇을 보는가?
입력 2012-11-06 18:05
찬송 :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545장(통34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6장 25~34절
말씀 : 1905년 오 헨리가 쓴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화가 지망생 존스는 심한 폐렴에 걸려 잘 먹지 못하고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건너편 집에 담쟁이넝쿨이 있었는데, 그 넝쿨에는 몇 남지 않은 잎사귀들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존스는 그 잎사귀가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잎새가 떨어져 버리면 자신의 생명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 속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전부로 여기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현실 너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첫째, 자연을 통해 보여주시는 믿음이 있습니다(26∼28절). 사람은 걱정과 염려로 살아가지만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는 전혀 걱정, 염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공중의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 들의 백합화를 입혀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줄 알고 많은 염려와 근심에 싸여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시선을 공중으로 향하게 합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26절), 그리고 들을 바라보게 합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28절) 우리는 보고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아니라 믿음의 생각을 하십시오. 염려와 근심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절망일 것이며 근심일 것입니다. 염려에 쫓기지 마시고 믿음의 눈과 생각으로 염려를 쫓아내시기 바랍니다.
둘째, 염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27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염려는 헛된 수고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0명의 보고를 들었던 백성들에게 한순간 불안과 염려가 엄습했습니다. 심지어 가나안 족속들 앞에 이스라엘은 메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염려는 불안과 함께 우리의 생각을 마비시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염려 가운데 빠져들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염려를 멈추라고 합니다. 염려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염려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염려가 찾아올 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지금 이 순간 염려를 멈추고 기도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늘 아버지께서 있어야 할 것을 알고 계십니다(32절). 주님의 말씀 가운데 일관되게 흐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입니다. 공중의 새도, 들의 백합화도, 들풀도 먹이시는 아버지. 우리는 이방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때에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33절). 염려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보다 확실하고 귀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 : 주님, 하늘 아버지의 자녀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직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겨드리오니 받아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창근 목사(서울 광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