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한상인] 지도자의 사자후
입력 2012-11-06 19:08
최근 야당의 김모 의원이 대통령 급사가 새해 소원이라고 트위터에 올린 것이 공개된 것과, 연세대 황모 교수가 대선 여성 주자에 대해 생식기만 여성이라고 말한 것 등을 보면서 이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의 언어 수준에 대해 심각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말은 그 사람이다. 특히 지도자의 말은 파급력이 있으므로 자신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사자후를 발해야 한다. 지도자들의 선언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과거적이어서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연약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지도자의 음성은 마치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사람이 살아나듯이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미래적이어야 한다. 지도자의 외침에 모두 힘을 얻고 지도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긍정적, 미래적인 말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서 어떤 사냥꾼이 어미를 잃은 새끼 사자를 발견해 사냥꾼 막사로 데리고 와서 사냥개들과 함께 길렀다. 새끼 사자는 어미 개의 젖을 먹으며 새끼 개들과 함께 성장했다.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새끼 사자는 형제 개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기 시작했지만 새끼 사자는 아마도 자기는 개인 줄 알고 개처럼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 사자가 사냥꾼의 막사를 지나면서 “으르렁” 고함을 쳤다. 사자후! 성숙한 사자의 부르짖음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형제 개들은 꼬리를 내리고 숨기에 바빴다. 그러나 사자 새끼는 그 반대였다.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던 사자의 용맹스러움과 담대한 본성이 속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왔다. 눈이 빛나고 어린 갈기털이 쭈뼛 솟아오르고 다리에 힘이 가득 찼다. 새끼 사자는 개 우리에서 뛰쳐나와 드넓은 초원으로 달려 나갔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자후와 같다. 성경 호세아 11장 10절에는 “이 백성은 사자처럼 소리치는 나의 뒤를 따라오리라. 내가 소리치면 내 자손은 서쪽에서 달려오리라”(공동번역)고 말씀한다.
오늘날 지도자들에게서나 대선주자들에게서 사자후를 듣기가 쉽지 않다. 그저 세상에 영합하고 여론에 흔들리는 갈대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민심을 호도하고, 흑색선전이나 하는 잡소리가 난무한다. 참되고 진실하게 힘써 행하라는 무실역행을 외치던 도산 선생, 나의 첫째 둘째 셋째 소원은 오직 민족통일이라는 백범 선생, 더 나아가서 나라를 위해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고 군사들을 독려하며, 주일무적을 외치다가 순국한 충무공과 같은 외침을 이 시대에서 다시 듣고 싶다. 민족의 영혼을 일깨우는 사자후를 듣고 싶다.
역사에 길이 남을 외침 있어야
유럽 사람들의 멸시와 박해 속에서도 유대인들이 민족의 정체성과 우수성을 잃지 않은 것은 지도자들의 사자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매년 지키던 절기에서도 사자후가 선포되었다. 유대인의 신년 절기인 나팔절에 다음과 같은 말이 선포되었다. “잠에 빠져 있는 잠꾸러기들아. 잠에서 깨어나라. 선잠에 빠져 있는 잠꾸러기들아 정신을 차려라 … 일상의 사사로운 일에 빠져 영원한 진리를 바라보지 못하는 자여,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너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라. 너의 삶과 행사를 드높여라. 너의 악한 행위와 비천한 계획을 포기하라.”
제사장의 나팔소리는 하나님의 사자후이다. 제사장의 나팔소리를 들으며 유대인들의 정신이 깨어났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참된 지도자의 외침은 민족을 깨우는 사자후이다. 대선주자들이여, 선거만 끝나면 시들어버릴 소리를 외치지 말고 역사에 남을 사자후를 외쳐라. 한민족을 깨우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민족으로 드높일 사자후를 외쳐라. 그 외침에 21세기 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한상인 한세대 구약학 교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