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이석] 대선에 등장한 ‘성장’

입력 2012-11-06 18:33


총선 메뉴에 성장이 빠지더니 대선 정국에서도 생산 증대를 위한 정책보다 생산된 것을 경제적 약자들에게 더 많이 분배되도록 하는 재분배 정책들이 중심 메뉴로 강조되었다. 물론 생산 관련 정책들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초점은 성장이 아니라 주로 경제적 약자를 유리하게 해 주기 위한 규제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대선의 마지막 길목에서 재분배뿐만 아니라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소위 투 트랙(two track) 정책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나 문재인 후보 등 다른 주요 대선 후보들도 종전과 다른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성장 전략을 내세우고 이를 선전할 것이 예상되고 있어서 대선의 주요 어젠다로 성장의 중요성이 재조명될 것 같다.

참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실제로 어떤 후보가 내세운 정책이 더 높은 성장으로 귀결될지는 서로 열띤 논쟁을 벌일 것이고 국민들은 더 자세하게 따져보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박 후보가 성장을 언급하고 나섬으로써 성장이 대선가도에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재분배 정책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보통 이것이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임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렇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안다. 뿌린 자가 온전히 자신이 뿌린 결과를 거두고 책임질 때, 사람들은 더 많은 수확을 위해 씨를 더 잘 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뿌린 자가 아닌 사람도 수확에 동반해서 참여케 한다고 해서 그런 노력이 왕성해지는 것이 아님을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은 약자를 보호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길러지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경제의 성장이란 인력을 포함한 자원들이 사람들의 수요를 더 잘 만족시키는 곳에 투입되어 더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게 될 때 그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떻게 할 때 소비자들의 필요를 더 저렴하게 잘 만족시킬 수 있을지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하는 기업가정신이 발휘되고, 그 결과를 자신들이 거두는 상황일 때 자원들이 더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기업가정신의 발휘가 바로 더 높은 부가가치의 수확을 위해 씨를 잘 뿌리려는 노력인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경제성장으로 귀결된다.

이제 대선 과정에서 이런저런 정책들이 제안될 것이고 그 정책이 성장 잠재력을 높일 것이라고 선전될 것이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성장 잠재력’이라는 나무가 있고 이를 정부가 나서서 세금으로 만들어진 재정을 투입하는 정책으로 키운다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업가정신이 잘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일 뿐 어느 곳에 씨를 뿌리면 더 많은 수확을 얻을지를 직접 정하는 것이 아니다.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고 한다. 경기침체기는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시기이지만 동시에 종전에 잘못된 투자가 정리되어 가는 치유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 시기를 잘 보내면 우리 경제의 체력은 더 강해질 것이다. 성장이라는 화두와 함께 단기적인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종전의 잘못된 투자가 정리되는 고통이 클 때 그것을 완화시켜 달라는 정치적 요구에 대한 대응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필요성이 너무 강조되어 이것이 땅을 더 굳게 하는 일련의 과정을 방해하는 수준을 넘지 않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단기적 경기부양은 장기적 성장을 저해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온 뒤 갠 하늘은 유난히 더 맑고 깨끗하다. 대선에 등장한 ‘성장’ 메뉴가 그런 하늘에 부는 바람처럼 신선하게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김이석 시장경제제도硏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