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 “영혼이 담겨있지 않은 영화는 누구도 공감안해”

입력 2012-11-05 19:16

‘결혼피로연’ ‘음식남녀’ ‘센스 앤 센서빌리티’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 대만 출신 이안(58) 감독의 영화는 “이 영화를 모두 한 감독이 만들었다니”라고 할 정도로 소재와 표현의 폭이 넓다. 내놓는 작품마다 뛰어난 이야기와 비주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이안 감독이 5일 한국을 찾았다.

내년 1월 3일 국내에 개봉되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이안 감독은 이날 서울 여의도동 CGV여의도에서 직접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며 설명한 후 간담회를 가졌다. 그의 내한은 2007년 ‘색, 계’ 이후 5년 만이다.

그는 “이번에는 심오한 감정을 다룬 영화 ‘색, 계’와는 완전히 다른 ‘익사이팅’한 영화다. 그동안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촬영이 어려웠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 태평양 한가운데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절박한 상황, 좁은 구명보트에서 호랑이와 함께 남게 된 소년이 겪은 227일간의 여정을 담았다. 날치떼가 습격하고, 보트 위의 호랑이는 호시탐탐 소년의 목숨을 노린다.

전 세계적으로 700만부 이상 팔린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많은 감독과 제작사가 영화로 만들 욕심을 냈지만 쉽지 않았다. 이안 감독은 “10년전쯤 소설을 읽었다. 삶이 주는 경이로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영화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년 전 20세기폭스사가 영화 제의를 했다. 기술적 문제와 책이 담고 있는 철학적 문제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두 가지 해결책으로 이를 극복했다. 하나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제3자가 성인이 된 주인공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의 회상으로 소년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기술적으로 3D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3D는 단순한 신기술이 아니라 이야기를 표현해낼 새로운 예술미디어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주인공은 3000대 1의 경쟁을 뚫고 뽑힌 인도 소년 수라즈 샤르마. 이안 감독은 “순수함을 표현할 수 있는 신인이 필요했다. 촬영 전까지 6개월 정도 내가 직접 연기 지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아시아 감독으로서 그는 “할리우드에서는 감독이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정책을 설명하듯 영화 의도를 설명해야 한다. 이것을 못하면 항상 현장에서 화가 나 있는 감독으로 비칠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나의 삶 자체”라며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영화는 그 누구도 공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자신부터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