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원전 5·6호기 가동 중단] 고장 왜 잦나 했더니… 곳곳에 미검증 부품 5233개
입력 2012-11-05 22:04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이 원전에 대량 사용된 것으로 밝혀져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2003년부터 올해까지 위조된 검증서를 통해 원전에 납품된 부품 중 실제 원전에 사용된 것은 136개 품목, 5233개 제품이라고 5일 밝혔다.
품목별로 보면 과전류 발생 시 설비보호 기능을 하는 전기차단기 등에 사용되는 퓨즈류가 47개 품목으로 가장 많다. 이어 계전기류 29개, 전자부품류 20개, 계측기류 12개, 전기부품류 12개, 온도스위치 등 스위치류 9개, 전자모듈류 7개 품목 등이다.
원전별 비중으로 보면 영광 5·6호기에 집중적으로 납품, 사용됐으며 영광 3·4호기와 울진 3호기에는 일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안전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냉각펌프 등에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퓨즈나 스위치, 다이오드 등 일반 기계류에 통상 사용되는 상용 품목들은 원전 운영상 보조기능을 하는 설비들에 설치돼 왔다고 설명했다.
한수원 측은 “중요 시설에는 설치되지 않은 만큼 미검증품이 오작동하더라도 원전 안전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정상 가동되거나 만일의 경우에도 사고가 아닌 통상의 ‘자동정지’가 전부”라고 밝혔다.
그러나 원자로 내부에 설치돼 있지 않지만 온도스위치와 압력조절기 등 미검증 제품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원전이 ‘정지’를 넘어 ‘사고’ 수준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온도스위치는 온도이상 시 경보와 신호를 제공하는 기능을, 저항기는 온도스위치와 전자기판에 설치돼 제어신호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압력조절기는 공기 압력조절 기능을 한다.
일각에선 훨씬 일찍 상업운전에 들어간 울진 1호기나 고리 1호기보다 고장이 잦은 영광 5호기 등에 위조 부품이 대량 공급된 사실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광 5호기의 경우 2005년 5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총 18건의 고장이 발생했다.
검찰수사 결과 그동안 잦은 원전 고장의 원인이 내부 직원의 비위로 연결되고, 핵심 부품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날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될 수 있다.
한수원은 이번 검증서 위조사건을 외부 제보를 통해 확인했다. 지난 9월 21일 외부 제보 후 한수원 자체조사를 통해 다량의 검증서 위조를 확인한 후 지난 2일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것이다.
검찰은 영광 5호기의 중요 전기장치인 변압기가 현재 고장 나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인 점을 중시하고 있다. 또 검증서가 위조된 제품이 방사능 누출과 관련된 핵심 안전설비에 사용됐는지도 중점 조사할 방침이다.
광주지검은 “영광원전 5·6호기의 위조부품 조달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하고 원전에 사용된 각종 부품의 품질검증서가 대량 위조된 경위와 구체적인 납품과정 등을 캐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도 뒤늦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수원의 품질검사 체계, 자격업체 관리를 전면 정비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 소속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조사에 나섰다.
한편 영광 5·6호기 인근 주민들과 원전 관련 9개 단체로 구성된 ‘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영광공동행동’은 “원전 3·4호기의 총체적 점검은 물론 사용연한을 넘긴 5·6호기를 서둘러 폐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장희 기자, 영광=장선욱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