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글은 江山의 도움 받아야

입력 2012-11-05 11:09

文字塵埃我自知

向來諸老誤相期

揮毫當得江山助

不到瀟湘豈有詩

내 작품 하찮은 것을 내 스스로 아노니

종래 원로들은 내게 잘못 기대하였다오

글쓰기는 강산의 도움을 얻어야 하니

소상강에 가보지 않고 어찌 시를 쓸 것인가

육유(陸游:1125∼1209) ‘우독구고유감(偶讀舊稿有感)’ ‘검남시고’


인걸은 지령(地靈)이라는 말도 있듯 뛰어난 글은 강산의 도움(江山之助)을 받아야 한다. 이전 사람의 글이나 흉내 내고 자구나 고치는 것이 글은 아니다. ‘예기(禮記)’에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사물이 그렇게 만든다’는 말이 있고, ‘문심조룡’에도 굴원이 시가의 정감을 깊이 통찰한 것은 강산의 도움이었다 했다.

오늘날 말로 하면 여행을 많이 하고 체험이 풍부해 문학작품에 생동하는 기운이 있다는 뜻이다. 사마천은 명산을 편력해 문장이 기이하고 웅장하며, 굴원은 소상강(瀟湘江)에 추방되어 말이 슬프고 괴롭다. 시성(詩聖)으로 추앙되는 두보도 고생한 뒤 시가 더욱 정교해졌고 문장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한유도 궁벽한 곳에 가 본 뒤에 글이 묘해진 것이다.

육유는 당시 강서(江西) 지방 관리로 파견되었는데 소상강 지역의 수령을 자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예전 원고를 보고 감회가 있어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여기서 문자는 문장이라는 뜻이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쓴 글을 보고 막연하게 짐작으로 시상을 전개해서는 안 되고, 직접 체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직접 가 보지 않고 쓴 시는 시가 아니라고 말한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가는(讀萬卷書 行萬里路)’ 웅대한 스케일이 있어야 좋은 글이 나올 것이다. 명산대천을 두루 돌아보아 가슴에 호연지기를 품고 많은 인걸과 교유하고 다양한 문물을 체험해야 실감이 넘치는 글이 나온다.

가을이 서서히 지고 있다. 대자연이 좋은 기운을 빌려줄 때 한편의 글을 써 보면 어떨까. 빈부도 귀천도 없이 취해도 금하지 않고 써도 다함이 없는 자연의 문장, 그 문장이 사람의 회포를 자아내는 이즈음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