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메이지유신
입력 2012-11-05 19:08
삿초(薩長)동맹은 일본 근대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분열상을 빚던 양대 지방 세력인 번(藩)이 힘을 합침으로써 675년에 걸친 막부(幕府) 봉건체제를 무너뜨려 메이지유신이 가능한 토대를 만들었다.
1866년 1월 교토에서 만난 당대 일본 최대 번인 사쓰마(薩摩)와 조슈(長州)는 막부 토벌에 협력한다는 6개 조항의 비밀동맹을 체결했다. 두 세력은 일왕을 중심으로 서구열강을 배척한다(尊王攘夷)는 데 뜻을 같이했지만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조슈의 병력이 사쓰마 연합세력에 의해 교토에서 축출당하는 수모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중재한 것은 사카모토 료마였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소설 ‘료마가 간다’의 주인공인 그는 이들이 앙금을 씻고 왕정복고에 힘을 합치도록 했고, 반서구 입장을 선회해 근대화의 주역을 맡도록 했다.
일본의 대표적 극우 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 지사가 최근 교토에서 일본유신회 대표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과 만났다. 회동 장소로 이곳을 택한 데는 계산이 있었던 듯하다. 교토는 삿초동맹이 맺어진 역사적 장소다. 이곳에서 일본의 지방세력을 양분하는 간토(關東)와 간사이(關西)의 수장을 지낸 두 사람이 만나 146년 전 사쓰마와 조슈처럼 정치연합을 만들어보겠다는 이미지 정치를 한 셈이다. 일본에서 가장 추앙받는 정치인 료마의 역할을 이시하라가 자신이 한번 맡아보겠다는 의미다.
동맹의 기치도 ‘일본유신대연합’을 내걸었다. 하시모토의 유신회를 의식한 작명이겠지만 침체된 일본의 국운을 되살려보겠다는 의지를 일본 국민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실상은 우익 연합이다. 두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평화헌법의 수정·파기와 재무장을 주장하고 있고, 과거사 반성이나 영토 문제에서 짙은 우익 성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어려운 시절 매춘은 이익이 남는 장사”라는 망언이나 일삼는 극우 인사가 메이지유신을 부활하겠다고 나선 것은 역사를 한참 잘못 읽은 것이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된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지역을 온통 피로 물들였던 호전성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청산하지 못한다면 영광된 미래가 다시 찾아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하시모토 시장마저 “모든 걸 ‘진짜 보수’라는 이념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