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년간 위조품 사용해도 까맣게 모른 原電
입력 2012-11-05 19:09
중고부품을 새것처럼 위장해 원자력발전소에 납품한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게 얼마 전인데, 이번엔 품질검증을 받지 않은 부품을 검증받은 것처럼 속이고 원전에 공급해온 업체들이 적발됐다. 부품을 납품받은 한국수력원자력이나 감독부처인 지식경제부는 10년 동안이나 까맣게 몰랐다.
지경부는 어제 브리핑을 갖고 원전 부품 공급업체 8곳이 2003년부터 올해까지 외국기관에서 발급하는 품질보증서를 위조해 한수원에 납품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광주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발표했다. 위조된 품질검증서를 통해 납품한 136개 품목 5233개 제품이 실제 원전에 사용됐다. 지경부는 이들 부품이 영광 5·6호기에 집중적으로 사용된 점을 고려해 이 두 곳의 가동을 중단하고 문제의 부품을 교체하기로 했다.
툭하면 고장나고 잇따라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들은 불안하다. 이번에 문제된 부품은 과다한 전류발생시 전기를 차단해 설비를 보호하는 퓨즈, 온도 이상시 경보·신호를 보내는 온도 스위치, 전기부품을 냉각시키는 냉각팬 등 원전 안전성과 관련된 제품들이다. 정부는 문제 부품이 오작동을 일으키더라도 3중, 4중 안전장치가 돼 있어 방사능 유출사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원전은 사소한 실수나 부품 오작동만으로도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방심해선 안 된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다.
업체들이 10년 동안이나 품질보증서를 위조한 부품을 공급할 수 있었던 데는 한수원 직원들이 연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수원은 그동안 뇌물을 받고 낡은 부품을 원전에 사용했는가 하면 지난 2월에는 고리원전 1호기 고장사실을 한 달간이나 조직적으로 은폐했고, 9월에는 고리원전 재난안전팀 소방대원 2명이 마약을 투약한 사실까지 드러나 충격을 줬다.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번번이 양치기 소년이 된 꼴이다.
국민들의 생명이 걸린 사안을 놓고 장난치는 비위 행위에 대해선 강력한 처벌을 통해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독부처인 지경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사건도 외부 제보가 없었더라면 그대로 묻힐 뻔했다. 원전 부품 구매과정을 재점검해 투명한 구매시스템과 철저한 감사체계가 정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난달 29일 월성원전 1호기가 가동을 멈춘 데 이어 영광원전 5·6호기 가동중단으로 겨울철 블랙아웃(대정전)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영광 5·6호기의 부품교체가 연말까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1월과 2월에는 예비전력이 30만㎾까지 급락할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산업계와 각 가정의 절전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