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정태] 공영방송 사장 임명 어떡하지
입력 2012-11-05 19:13
①여당 대변인이 공영방송사에 전화를 한다→보도책임자에게 야당의 지구당 전당대회를 보도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보도하면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위협한다→전화 통화로 부족했는지 문자메시지도 보낸다→또 다른 공영방송사에도 같은 방식으로 압력을 가한다.
②대통령이 특혜성 사채대출을 받았다는 의혹을 한 일간지가 특종 보도한다→이를 막기 위해 보도 며칠 전 대통령은 일간지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건다→보도할 경우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협박한다→대통령은 다른 신문사에도 압력을 행한다.
‘낙하산 사장’ 이젠 없어져야
우리나라 얘기? 독일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이다. 첫 번째 사례는 연립정부 내 소수당인 기독교사회당 대변인의 최근 전화 스캔들이다. 야당과 학계로부터 언론자유 침해라는 거센 비난이 일자 대변인은 지난달 25일 사퇴했다. 두 번째 케이스의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은 일간지 ‘빌트’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알려지고 이후 각종 특혜 의혹이 잇따라 제기돼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자 지난 2월 전격 사퇴했다.
정부 여당의 언론 장악 시도는 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동서양에서 예나 지금이나 있어 왔다. 공영방송 사장 임명권 문제도 그중 하나다. 누가 임명권을 갖느냐에 따라 방송에 대한 영향력이 달라지는 것은 불문가지. 그렇기에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는 대통령 재임 시절 법을 개정해 공영방송 사장 임명권을 자신의 권한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는 집권 기간 내내 방송 장악에 골몰했지만 결국 재선에 실패했다. 반면 지난 5월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올랑드는 대통령의 공영방송 사장 임명권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여당의 방송 지배를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권에 올랑드 같은 인물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면 지금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해법을 도출하는 게 어렵지 않겠으나 현실은 정반대다. 여야는 차기 사장 후보자를 선정할 KBS 이사회(9일)와 MBC 사장 해임안을 처리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임시이사회(8일)를 앞두고 첨예하게 격돌하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이어져 온 ‘낙하산 사장’ 탓이다.
본질적으로 이사진 구성 자체가 문제다. 대통령에게 사장 후보를 임명제청하는 KBS 이사회는 여당 7명, 야당 4명의 추천 인사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대통령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회는 여당 측 6명, 야당 측 3명이다. 이처럼 여야 균형을 상실했으니 여당 측 마음대로, 즉 대통령 의중대로 사장이 임명된다. KBS 사장은 전 정권에서 정연주씨, 현 정권에선 이명박 대선 후보 캠프 출신의 김인규씨가 임명됐고, 결과적으로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재철 MBC 사장의 경우 취임 초기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를 맞았다”는 과거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이 지배구조 개선의 적기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방향으로 개선돼야 마땅하다. 이사진 구성의 여야 균형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대다수 선진국처럼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해 중립적 인사를 사장으로 선임하는 게 옳다. 야권에 이어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사장 선출의 투명성을 약속했다.
그렇다면 당장 여야가 구체적인 논의에 착수해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는 게 맞다. 대선 이후로 미룬다면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권력을 잡으면 생각이 달라지니까. 근데 현재 대선 판세는 누가 집권할지 모르는 예측불허 상황 아닌가. 그만큼 당리당략으로 접근할 소지가 적은 지금이야말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적기(適期)다.
박정태 문화생활부장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