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6일] 천국 윤리

입력 2012-11-05 17:50


찬송 : ‘신자 되기 원합니다’ 463장(통51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5장 43~48절


말씀 : 산상수훈은 구약의 율법에 매여 있던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무리들은 주님의 말씀에 심히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새 시대의 새 윤리를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윤리에 대한 철저한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천국윤리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교회의 거룩함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차원이 다른 윤리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사랑에 대한 높은 윤리가 있어야 합니다(43, 44절).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이웃은 사랑했지만 원수는 미워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44절). 여기에서 원수는 언약 밖에 있는 이방인들을 지칭할 때가 많았습니다. 유대인은 그들을 증오하고 미워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웃사랑의 범위를 확장시키셨습니다. 원수에게 작은 호의를 베푸는 정도가 아니라,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는 새로운 의무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을 구분 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혹 원한을 풀지 않고 원수맺음이 있다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변화의 길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랑으로 그리스도인은 구별돼야 합니다(46, 47절). 사람은 외모를 보고 행동을 보며 타인을 판단합니다. 세상에서의 사랑은 끼리끼리의 사랑입니다. 한마디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사랑이라는 것이죠.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47절) 주님은 세상 사람이 다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구별된 사랑을 하라고 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하는 사랑이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위한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남들이 다 하는 사랑이 아니라 남들은 따라올 수 없는 사랑을 하라고 하십니다. TV 광고 카피 가운데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는 문구가 생각납니다. 세상이 따라올 수 없는 사랑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오직 예수님의 사랑만이 세상이 따라올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받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구별되십시오.

셋째,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온전함같이 되어야 합니다(48절). 우리가 어찌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바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윤리의 목표치를 하나님 수준에까지 높이고 계십니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것입니다. 천국윤리의 가장 기본적인 수준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는 것”입니다(마 7:12). 주님은 그 수준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은 수준을 요구하십니다. 말씀과 성령에 순종할 때 이룰 줄 믿습니다.

기도 : 주님,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천국윤리를 따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창근 목사(서울 광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