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전규태 (12·끝) 십자가 메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입력 2012-11-05 18:01


나는 신화비평적, 정신분석학적 평론 활동을 주로 했지만 비교문학을 한 탓으로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는 문학 활동을 했고,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 활동을 해왔다.

이런 나의 활동을 호의적으로 보는 이도 물론 있다. ‘학문 사이를 뛰어넘기(學際的)’이니 시화무이(詩畵無異)의 경지를 지향하기도 하는 ‘선구적’인 문인으로 칭찬해주기도 한다. 외국 생활을 많이 한 탓으로 지난번 경주에서 열렸던 국제 펜대회 때 우리 문화와 문학을 두루 알리는 책으로 내 영문 저서가 채택된 것도 그 열매이긴 하다.

그런데 이렇게 ‘팔방미인’이 된 건 내 탓만이 아니다. 한 예를 들어보자. 1970년대 후반에 나는 하버드대의 옌칭 학사 연구교수직의 영예를 얻었었다. 대학 대선배이기도 한 이은상 스승은 이를 반가워하셨고, 인디오 유적 답사 또한 격려해주셨다. 그런데도 국내에서의 바쁜 일을 마무리하느라고 예정보다 2주 늦게 임지에 도착했었다. 그 바람에 옌칭 도서관 안에 있는 연구실을 배정받지 못하고 그 이웃에 있는 심리학 및 문화인류학 연구동에서 기숙하게 됐고 그에 따라 심층심리학자와 인류학자들과 곧잘 교류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이들 학문에 심취하게 됐고, 고고학자가 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곤 했다. 내가 학제연구 학자가 되고 우리 겨레와 같은 인종인 잉카, 마야, 아스텍 문화 유적지를 위험을 무릅쓰고 답사했던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이런 운명(?) 탓으로 나는 ‘팔방미인’이 된 셈이다. 이제 와서 그런 나를 후회하지 않는다.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포기한다면 내가 곧잘 써오고 있는 ‘색안경’이라는 비유가 매우 모호하고 부정확한 것일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은 그런 편이 더 나을 듯도 싶다.

내 문학세계를 접하지 못했던 독자들을 위해 ‘색안경’의 효용을 몇 가지 든다면, 그 하나는 내 스스로의 표정은 물론 생각도 곧바로 표출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두 번째로는 색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눈부시지도 않고 어지럽지도 않으며 세상사나 사람들, 특히 꼴불견을 안 보게 되며 못된 일의 불똥을 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그 거대한 눈의 중심을, 눈동자를 갖지 않은 채로 자유롭게 볼 수 있다는 편안함이다.

내가 유럽의 미술기행을 즐기면서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서 본 안제리코의 눈을 엷은 가리개로 가린 채 응시하는 예수님의 눈이 떠오른다. 수도원의 수많은 독방의 조그마한 창 앞에 앉아 하늘을 우러르며 고행을 했던 수도사들을 떠올리며 나는 여기서 기도의 체험이 지닌 극치를 느꼈었다. 나는 자신감 넘친 자기확립을 지니고 있었기에 나는 ‘색안경’의 비유를 즐겨 썼던 것이다.

경마장에서 질주하는 말처럼 곁눈질을 할 수 없도록 눈막이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주님은 좁은 길을 걸어오셨는데, 우리가 시야 넓은 길을 택하려 든다면 우리는 매사에 성공할 수 없고, 하나님과도 동행할 수 없다고 본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과 동행했다. 그리고 요셉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요셉과 동행을 했었다. 모세가 가나안 복지까지 갈 때 하나님이 직접 오른팔로 모세를 붙잡아 일거수일투족을 교통하고 여쭈어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하나님과 늘 동행한 에녹도 마찬가지였다.

“주여, 눈시울이 닫힐 때까지 함께하소서. 십자가를 메신 주의 모습을 보여주시옵소서. 살든지 죽든지 함께 계시옵소서.”

한동안 내게 주어진 가난과 슬픔, 그리고 역경은 연단이다. 따라서 축복이다. 이 세상은 아름답다. 이 세상은 믿고 의지할 만한 신조와 부를 만한 노래를 찾고 있다. 이를 위한 사명도 겸손히 받았다. 이제 남은 일은 신명을 다해 이에 헌신할 일만 남았다.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