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식 유혹 있었지만 물방울 외길 후회 없어”… 김창열 화백 국립대만미술관서 개인전

입력 2012-11-04 19:36


‘물방울’ 그림으로 세계 미술계에서 이름을 높인 김창열(83) 화백이 대만 중부 도시 타이중에 위치한 국립대만미술관 초청으로 3일 오후 개인전 개막식을 가졌다. 1988년 개관한 대만미술관은 아시아 예술교류를 위해 ‘아시아 아트 비엔날레’ 등 대규모 국제 전시를 열었고, 영향력 있는 아시아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를 기획해 왔다.

대만 문화부 초청으로 열린 이번 전시에는 1964년부터 최근까지 작품 가운데 각국 소장가에게서 대여한 김 화백의 작품 50여점이 출품됐다. 한국 작가가 이곳에서 개인전을 열기는 처음이다. 마잉주 대만 총통이 축전을 보내고, 100여명의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개막식에서 김 화백은 “변변치 않은 그림을 이렇게 훌륭한 미술관에서 선보여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 화백은 “40년 가까이 물방울 그림을 그려왔는데, 아직 득도는커녕 근처에도 못 갔다”며 “눈에 보이는 물방울 자체보다는 붓질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이상을 그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대를 나와 60년대 추상미술에 심취하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후 71년부터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물방울 그림을 그린 그는 ‘동양적 생명철학’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막식 이후 한국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평생 동안 물방울 그림을 그리는 것이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에 “물방울의 노예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마누라가 예뻐서만 같이 사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인자(因子)가 있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다른 방식의 작품에 대한 유혹도 있었으나 한 가지 길을 걸어온 것에 후회는 없다”고 덧붙였다.

물방울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70년대 초반 파리에서 작업할 당시 형편이 너무 어려워 마구간을 빌렸는데,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지우기를 반복하던 중 물감을 떼어내기 위해 물을 뿌리다 보니 어느 날, 영롱한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후 75년 서울 인사동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통해 그림이 전부 팔리면서 인기 작가로 부상했다.

황차일랑(63) 대만미술관장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 전시를 통해 아시아 문화예술 교류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며 “극사실적인 물방울과 한자가 결합된 그림에 대해 관람객들이 매우 신기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 관장은 “우리 미술관의 연간 관람객이 100만명 정도인데, 이번 전시로 20만명 정도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대만=글·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