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안녕하십니까-(2부) 학생 정신건강 현주소] (6) 스마트폰 중독
입력 2012-11-04 22:44
女-카톡·男-게임에 탐닉… ‘폰’ 없으면 정서불안도 심각
중학교 2학년인 A양(경기도 고양시)은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본다. 일찍 잠자리에 누워 답장을 놓친 날은 욕설 수십 개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 10분쯤 걸리는 등·하굣길에도 카톡은 절대 쉴 수 없다. 자칫 집단카톡이라도 놓치면 한동안 뒷담화에 시달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잠시 ‘왕따’ 피해를 당했던 A양은 “카톡으로 친구에게 말을 걸었는데 답이 없으면 내가 또 왕따가 됐나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최근 조사를 보면, 10∼49세 스마트폰 이용자 중 중독비율은 8.4%로 인터넷 중독(7.7%)보다 높게 나타났다. 취약요인은 두 가지, 청소년과 여성이었다.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은 11.4%로 성인(7.9%)보다 3.5% 포인트, 여성(8.6%)은 남성(8.2%)보다 0.4% 포인트 높았다. 이렇게 따지면 스마트폰 중독의 최대 취약층이 나온다. 청소년이자 여성인 10대 소녀이다.
◇‘카톡’에 빠진 소녀들=게임중독이 드문 여학생의 인터넷 중독은 남학생의 20% 정도에 불과하지만, 스마트폰 중독은 1대 1로 남녀비율이 비슷하다. 중독 양상도 확연히 다르다. 스마트폰으로도 여전히 게임을 즐기는 남학생들과 달리, 여학생들은 카톡 같은 문자대화와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빠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전문가들은 소녀들의 스마트미디어 중독을 일종의 ‘관계중독’이라고 말한다. 기존 인터넷 중독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대응센터 서보경 박사는 4일 “소녀들이 카톡에 빠지는 건 일종의 ‘내 편’, ‘내 친구’를 확인하는 방법”이라며 “그룹을 지어 비밀 얘기를 나누고 소속감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쓴다”고 설명했다. 10대 여학생의 카톡 중독이 또래집단에 받아들여지고자 하는, 지극히 소녀적인 특성이라는 뜻이다. 서 박사는 “아이들은 카톡을 통해 의미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연결돼 있다는 느낌, 애착을 주고받는다”며 “소녀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역설적으로 사랑의 결핍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게임’ 중독 소년들=남학생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게임중독의 연장선으로 이해된다. 인터넷의 게임중독이 모바일게임으로 전이되는 일종의 과도기라는 것이다. 실제 인터넷 중독자의 25%, 그중 고위험군의 절반 가까이(43.8%)는 스마트폰 중독 중상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는 스마트폰으로 수십만 원짜리 게임 아이템을 구입했다가 요금폭탄을 맞은 부모들의 전화상담이 종종 접수된다. 아이들은 숨겨둔 스마트폰을 찾아내거나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이승희 상담사는 “스마트폰은 작고 개인적인 미디어여서 책상 밑이나 이불 속에서 몰래 할 경우 부모나 교사의 통제가 어렵다”며 “아직 심각성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학교의 인식도 아직은 낮은 수준이다. 지난 5월 서울의 한 고교에서 학생들의 스마트폰 이용 행태를 관찰한 김남형 계원예술대 교수는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교사의 이해도가 너무 낮고 학교 내에 스마트폰 중독 등에 대한 상담 체계가 전무했다”며 학교의 무대응을 지적했다.
◇스마트폰 집착 유독 강해=스마트폰 중독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기기 자체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인터넷 중독이 인터넷을 매개하는 컴퓨터에 대한 애착으로 드러나지 않는 반면, 스마트폰 중독은 폰 자체에 집착을 보인다. 특히 여성에게 흔한 증상이다. 스마트폰이 손에 없으면 소화가 안 되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어려운 신체적 이상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 김동일 교육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은 기기 자체가 사용자를 중독에 쉽게 노출되도록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며 “휴대성과 접근성이 너무 좋고 앱 자체도 감성적으로 사용자의 요구에 빠르게 부응하도록 설계돼 있어서 더 쉽게 집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보경 박사는 스마트폰 중독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선 스마트폰 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스마트미디어의 적정한 이용을 위해 다양한 홍보와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