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선진 시장만 편식… 日 전자 ‘날개없는 추락’
입력 2012-11-04 21:55
“일본 전자산업-퓨즈가 끊어졌다.”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렉스 칼럼의 제목이다.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이끌었던 전자산업이 몰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주 파나소닉은 올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서 7650억엔(약 10조원)의 적자를 볼 것이라고 밝혔다. 샤프도 사상 최대인 4500억엔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은 일본 전자산업의 트로이카인 파나소닉, 샤프, 소니의 신용등급을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원은 4일 “일본 전자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내수 위주로 가면서 자멸했다”고 말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도 최근 일본 전자 업체들이 한국 업체에 1위 자리를 내준 원인을 분석했다. 통신에 따르면 일본 전자산업이 내수와 선진국 시장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게 문제였다. 반면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국내와 선진국 시장 매출 비중이 세 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다양한 시장을 공략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일본 업체들은 국내 생산체제를 고수, 원가 상승을 불러오면서 가격 경쟁력에서도 밀렸다. 지나친 자신감도 발목을 잡았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하다 후발 주자들에 선두자리를 내줬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의 몰락은 한국 기업에 기회가 됐다. 삼성과 LG는 전자업계 각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키웠다. D램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고 리튬이온전지도 삼성SDI가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LCD를 처음 개발한 샤프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에 밀렸다. 스마트폰에선 애플과 삼성의 선두 경쟁 속에 일본 업체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가전담당 소현철 연구원은 “파나소닉이나 소니는 LCD 패널에서도 경쟁력이 없고, 디자인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1년 내 드라마틱하게 살아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이 안심하기엔 이르다. 막강한 내수 시장을 거느리고 있는 중국의 전자업체들이 맹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레노버는 올 상반기 세계 PC 시장의 15%를 차지하면서 1위인 HP와의 격차를 0.6% 차이로 줄였다. 통신기술 업체인 화웨이는 애플과 삼성을 위협할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국 업체들의 인수·합병, 제휴 움직임도 활발하다. 레노버는 일본 NEC와 조인트 벤처를 만들어 순식간에 일본 내 PC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고, 브라질 PC업체 CCE를 인수했다. 중국 가전 1위 하이얼도 파나소닉의 자회사였던 산요전기 백색가전 사업부 등을 사들였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기술적 우위를 앞세워 중국의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최근 파나소닉이 차세대 전략 기술로 점찍었던 솔라셀 분야를 레노버가 선점한 것처럼 차세대 기술은 일본, 한국에 이어 중국으로 이동 중”이라며 “앞선 기술에 안주할 경우 일본처럼 1위 자리를 뺏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